금융당국이 우수 기관투자자들의 선물거래 현금증거금을 면제해도 좋다는 방침을 정하자 증권사들이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아무리 '우수'한 기관투자가라고 하더라도 부도 위험이 아예 없지 않은데다, 현금증거금으로 이자를 벌 수도 없어졌기 때문.

증권 업계에서는 사장단 회의 같은 '단체 행동'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그다지 일이 증권업계 의중대로 쉽게 풀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 말은 '자율' 이라지만...

한국거래소는 6월28일부터 기관투자자에 대한 현금증거금 제도를 바꿀 예정이다. 기관투자자들이 선물거래시 납부하는 증거금 중 현금 의무비율을 증권 및 선물회사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증거금의 3분의 1 이상은 의무적으로 현금납부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앞으로 우수 기관일 경우, 이 마저도 현금이 아닌 채권이나 주식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이로 인해 적격 기관투자자 등급을 받은 기관은 현금을 한 푼도 넣지 않아도 된다.

거래소는 적격 기관투자자의 파생상품 거래비용을 절감해 시장 규모를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위험관리 시스템이 잘 구축된 금융기관 위주로 파생상품시장의 성장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이같은 방안을 국채선물과 통화선물은 물론, 코스피200 지수선물에까지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적어도 국채선물이나 통화선물에 있어서 만큼은 증권사나 선물사 모두 별다른 반발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비교적 큰 덩치의 기관들이 주로 거래하는 국채선물·통화선물과 달리, 개인과 외국인 비중이 높고 개별 사모펀드까지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수선물을 같이 적용하겠다고 하자 증권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적격과 비적격 기관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모호한데다, 설사 기준을 정한다 하더라도 대 고객영업에 나서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누구는 적격판정을 내리고, 누구는 비적격 판정을 내릴 수 없다는 고충이 있다.

결제불이행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변동성이 큰 지수선물의 경우 반대매매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 현금이 아닌 채권이나 여타 주식이 증거금으로 잡혀있으면 결제하기가 곤란해진다는 주장이다. 주식 관련 선물은 개별 펀드별로 계좌가 달라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의 파생상품 관련 영업담당자는 "반대매매가 터지면 바로바로 처리가 가능해야 하는데 주식이나 채권은 결제일자가 달라 이에 따른 위험 관리가 힘들다"며 "금융위기 이후 결제리스크 관련 위험도가 상당히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반발하는 업계, 입장 확고한 당국

이에 업계에서는 긴급 실무자 회의를 갖고 이같은 의견을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금융당국에 전달키로 결정했다. 또 조만간 사장단 회의를 갖고 의견수렴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힘쓰려 하지 않고 앞으로 격화될 경쟁구도 형성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증권사들이 그동안 누려온 이익을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일괄적으로 증거금을 면제하라는 것도 아니고 차등 적용하라는 것"이라며 "영업상 관행에 비춰 봤을 때 이것이 증권사간의 경쟁구도 발생으로 이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투자협회 역시 이번 건은 증권사의 손을 들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금투협이 증권업계 뿐만 아니라 선물사와 자산운용사들의 이해관계도 챙겨야 하는데다 해당 이슈가 증권사의 이익에는 반할지라도 시장 전체 이익을 놓고 보면 실익은 더 크다는 평가에서다. 실제 같은 선물 매매주체인 선물사에서는 이번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적격 기관투자자에게 파생 거래시 현금을 증거금으로 내라고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증권사에게는 일부 마이너스 일 수 있어도 시장 전체로 보면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금투협은 증권사 사장단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이 부분을 설명하고 설득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증권업계는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지만 당국의 의지가 워낙 강경해 이를 공론화 하기도 다소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증권사의 고위 임원은 "회사 내부에서는 물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번 조치가 증권사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며 "같이 협력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