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16라인 기공식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도체 양산 경쟁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7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반도체 신규(16)라인 기공식에 참석해 올해 반도체와 LCD 등에 사상최대인 총 18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존 사상 최대 투자는 2008년의 14조원이었다.

올해 메모리 반도체 사업 투자액은 기존 5조5000억원에서 9조원대로, LCD 사업 투자액은 기존 3조원에서 5조원대로 늘어났다. 또 삼성전자는 올해 연구개발에 8조원을 투자해 예정으로 이를 포함한 총 투자금액은 26조원에 달한다. 이번 발표는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삼성전자 대규모 투자로 경쟁업체 죽이기 나서
경쟁업체 입장에서 5조5000억원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였기 때문이다. 5조5000억원도 전 세계 경쟁자들이 투자하겠다는 금액을 다 합친 것과 맞먹는 큰돈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 D램 업체인 하이닉스반도체는 올해 2조 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 삼성전자와 세계 1위 플래시 메모리 업체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일본 도시바는 1000억엔(약 1조2000억원)을 들여 요카이치시에 위치한 공장에 신규 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다. 하이닉스에 이어 D램 3위 업체인 일본 엘피다는 600억엔(약 7150억원)을 투자해 히로시마 생산공장의 생산설비를 업그레이드 할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PC에 주로 사용하는 D램 반도체 시장의 32%, 휴대전화·MP3 재생기 등 모바일 IT기기에 주로 사용하는 플래시 메모리 시장의 40%를 장악한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절대 강자다. 이번 투자 증액으로 경쟁업체와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관계자는 "이번 투자 증액은 다른 업체들이 감히 따라올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격차를 벌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몇년간 삼성전자는 "경쟁업체와의 '초격차(超隔差)'를 만들자"는 구호를 외쳐왔다. 그 초격차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번 발표로 몇년 만에 봄을 맞았던 반도체 업계에 여름 대신 겨울이 찾아올 것이란 이야기가 돌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력제품인 D램(DDR3) 1기가비트(Gb) 가격은 작년 1월 0.94달러에서 올 5월 현재 약 2.7달러로 2배 이상 급등했다. 작년 말 1.65달러까지 하락했던 플래시메모리(16기가비트) 가격은 현재 약 4달러 수준이다. 장기간 상승한 반도체 가격이 삼성전자가 신설한 라인에서 내년 제품을 뽑기 시작하면 폭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삼성전자발 혹한기 시작
최근 반도체 가격이 급등한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고 대부분의 업체가 장기간 적자를 냈다. 예를 들어 세계 2위 D램 업체인 하이닉스 반도체가 작년 3분기까지 7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독일 키몬다, 미국 스펜션은 아예 파산했다. 심지어 삼성전자도 분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삼성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가 아직 빚더미 위에 올라 있는 상태다.

그러나 세계 경제 호전으로 작년 말부터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가격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반도체 업계에 봄이 찾아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들은 현상유지를 원했다. 하이닉스반도체 김종갑 이사장은 최근까지 "가까운 시일 안에 세계 어느 업체도 신규라인이나 공장을 건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심 긴 봄과 이어지는 뜨거운 여름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반도체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도 비슷한 예상을 내 놓았다.

◆오너 이건희 회장의 결단, 단기 이익 대신 시장 지배력 강화
그러나 세계 1위 업체 삼성전자가 그런 업계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시 생사를 건 경쟁을 하자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단기적으로 대규모 투자증액은 삼성전자에도 마이너스다. 삼성전자는 경기도와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총 8개의 최신 반도체 생산라인(300㎜ 웨이퍼 사용)을 가지고 있다.

이 8개 라인이 삼성전자의 최신 D램과 플래시메모리 대부분을 뱉어낸다. 만약 삼성전자가 최신 라인 2개를 추가 건설하면 산술적으로 생산량이 25% 증가한다. 또 삼성전자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감안하면 전 세계 D램과 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이 8~9% 늘어나는 것이다. 이 경우 반도체 가격은 급락할 수도 있다. 또 수조원의 추가투자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과 순익을 짓누를 것이다.

단기 실적에 목을 매야 하는 전문경영인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증액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결정은 최근 컴백한 이건희 회장의 결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너인 이건희 회장이 단기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시장지배력을 강화해 장기적으로 더 큰 과실을 얻는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다른 기업들이 주저할 때 과감하게 투자해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실속 없는 신수종 사업 투자 발표 VS 과감한 삼성전자 투자
이번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결정은 지난 11일 삼성그룹이 발표한 신수종 사업 투자계획과 달리 실질적이고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내용이란 평가다.

지난 11일 삼성그룹은 오는 2020년까지 친환경 및 헬스케어 신수종 사업에 총 23조3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는 태양전지·자동차용 전지·LED·바이오 제약·의료기기다. 당시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복귀 일성으로는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단 삼성 그룹 매출은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거렸던 2008년에도 191조원의 매출을 올린 거대 기업집단이다. 작년 매출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200조원이 훨씬 넘는다. 23조3000억원이라고 하면 천문학적 숫자로 들리지만 10년 7개월로 나누면 연간 2조원 남짓한 돈이다. 쉽게 말해 삼성그룹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돈이 전체 매출의 1%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또 신사업도 전혀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삼성그룹은 이미 오래전에 태양전지·자동차용 전지·LED·바이오 제약·의료기기를 미래 신사업이라 선언했다. 말하자면 지난 11일 신수종 사업 발표는 기존에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며 투자액수도 10년치를 묶어 발표해 실제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곧 세종시에 바이오 시밀러 생산시설을 건설해 저렴한 가격의 복제약을 대량 생산해 판매한다고 이미 발표했다. 바이오시밀러란 특허 유효 기간이 지난 약과 비슷한 복제약을 대량 생산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삼성전자가 세종시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약 5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 이미 밝힌 바 있다.

삼성그룹은 11일 2020년까지 바이오 시밀러 사업에 2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단 사업에 진출하면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돈을 쏟아 붓고 시설 유지보수, 신규설비를 만들어야 한다. 초기에 5000억원을 투자한다면 그 이후 10년간 2조1000억원은 결코 많은 돈이 아니다. 말하자면 삼성그룹은 이미 알려진 것들을 다시 반복해 발표한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국가 1절을 주요 행사마다 부르다가 새로운 노래라며 2절을 부른 것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추가 투자 발표는 신수종 사업 투자 발표와는 격이 다르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회사의 주력사업에 대한 투자와 확실하지 않은 미래 사업에 대한 발표는 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