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겁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성장을 위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경제 회복세도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유럽 최대의 소프트웨어기업인 SAP의 짐 하게만 스나베(Snabe) CEO는 세계 경제가 그리스의 국가 부채 문제로 요동을 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세계 IT경기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낙관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 IT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특히 아시아 지역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 "아시아의 기업들이 우리의 비즈니스 솔루션을 활용해 더욱 빠르게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짐 하게만 스나베 CEO와의 인터뷰는 6일 서울 강남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그는 짐이 잔뜩 들어가 빵빵해진 노트북 가방을 직접 들고 정확히 인터뷰 예정시각에 호텔 비즈니스센터에 나타났다. 그는 "한국인들의 신중하면서도 혁신적인 기질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며 자신의 명함을 먼저 건넸다. 독일에서 온 그에게 IT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요즘 최대 관심사인 유럽의 경제문제에 대해 먼저 질문을 했다.
―세계 IT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보나.
"글로벌 경제위기는 끝나가고 있다고 본다. 나쁜 징후보다는 긍정적인 징후가 훨씬 많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다시 성장을 이야기하고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IT 투자를 했다면 지금은 성장을 위해 IT 투자를 한다. 우리도 지난 1분기 두자릿수 성장을 했다. 물론 위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스 문제 같은 국지적인 위기 요인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요인들이 경제 성장세를 꺾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 사태가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유로존은 확고한 상태이며 성장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스는 위기를 겪고 있지만 독일과 프랑스, 영국 같은 EU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다. 아시아도 높은 성장 가능성이 기대되는 곳이다."
―요즘 해외 CEO들을 인터뷰하면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다. 레버리지(leverage·부채를 통한 자산 증식) 효과가 사라지면서 앞으로 금융위기 이전 같은 고성장세를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어떻게 보나.
"기업과 투자자들의 행동 양태가 달라진 것은 틀림없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기업들은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IT 투자를 한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투자보다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신속하게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자를 원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도 소규모 프로젝트에 맞는 솔루션을 많이 공급하고 있다. 작은 솔루션들을 연결해 사용해도 프로그램의 일관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장점이기도 하다."
―올해 SAP의 성장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기존의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리더십을 유지할 것이다. 두 번째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분야인데,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다양한 비즈니스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대기업보다는 작은 IT 투자로 높은 효과를 기대하는 중소기업들이 타깃 고객층이다. 모바일도 미래의 중요한 시장이다. 스마트폰은 소비자가 어디에 있든 우리의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SAP는 지속가능 경영을 강조한다. 재무적 요소 뿐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경제적 의미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지속가능 경영과 SAP의 기업용 솔루션이 무슨 관계가 있나.
"현재 전 세계 기업 간 거래의 65 %가 SAP 솔루션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 솔루션은 단순히 재무적인 목표뿐 아니라 탄소 배출량 감축 같은 환경문제나 회계정보의 투명성 등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다양한 툴(tool)을 제공한다. 우리의 고객사인 한 정유회사는 우리의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축한 것은 물론 2억달러의 비용절감도 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 활성화가 이슈다. 1972년 5명의 전직 IBM 직원들이 만든 SAP가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한 비결은.
"SAP는 '비즈니스 솔루션'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를 잘 읽었다. 그리고 우리는 일찌감치 해외로 나갔다. 현재 1만2000명의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이 전 세계 50개국의 SAP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인재풀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연구원들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에 강점을 지니고 있고 독일 연구원들은 소프트웨어 설계에 뛰어나다. 또 일본 연구원은 모바일 솔루션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능력이 SAP 속에서 하나가 된다."
―솔직히 독일도 한국처럼 자동차 같은 하드웨어는 잘하지만,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산업은 잘할 것 같지 않다.
"(웃으면서) 우리는 미국처럼 게임을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의 비즈니스 소프트웨어는 기업의 공급망 관리나 대형 은행의 거래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독일의 핵심 산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독일의 장점인 탄탄한 엔지니어링과 설계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도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국 역시 제조업을 통해 탄탄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소프트웨어 하면 게임 같은 콘텐츠 산업을 먼저 떠올린다.
"임베디드(embedded·내장형) 소프트웨어가 갈수록 늘어나듯이, 이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일부다. 소프트웨어가 휴대폰 같은 하드웨어 제품을 차별화하는 핵심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 제조업도 소프트웨어로 어떻게 하드웨어를 차별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이 하드웨어에서 성공했듯이 소프트웨어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 SAP 내부적으로 보더라도 메모리 컴퓨팅(반도체 속에 컴퓨팅 기능을 내장시키는 것) 같은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을 한국의 연구인력들이 개발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연구개발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경쟁사인 오라클은 작년 M&A를 통해 적극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SAP는 M&A에 다소 소극적인 것 같다.
"우리는 혁신을 통해 성장의 원동력을 찾는다. 과거의 기술을 인수한다고 해서 시장점유율이 커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미래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을 중심으로 M&A를 한다. 메모리 컴퓨팅 같은 것이 대표적으로 우리가 인수한 기술이다."
SAP
전 세계 4만8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세계 최대의 비즈니스 솔루션 기업. 전사적자원관리(E RP)·고객관계관리(CRM)·공급망 관리(SCM) 등 다양한 비즈니스 솔루션을 전 세계 120여개국 9만5000개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작년 매출은 106억7100만유로(약 15조4000억원).
짐 하게만 스나베
올해 2월 SAP 공동 대표로 선임됐으며 SAP의 비즈니스 솔루션과 기술 조직을 이끌고 있다. 스나베 CEO는 덴마크 오르후스 경영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90년 SAP에 합류해 컨설팅·영업·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했다. 영어·덴마크어·불어·독어·스웨덴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