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9 세계금융보고서'에서 호주는 전년도보다 9계단 뛰어올라 금융업 세계 랭킹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WEF는 "호주 금융업이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2009년 금융위기 후폭풍 속에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OECD 국가는 호주와 한국, 폴란드 3개국뿐이다. 그중에서도 호주는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출구전략에 앞장섰다. 그동안 호주 하면 '원자재 강국'이었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며 명실상부한 '금융강국'으로 떠올랐다. 이런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시드니를 방문해 새로운 금융강국 호주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새로이 떠오른 '금융의 강자'
시드니의 중심지 마틴 플레이스(Martin Place)는 점심 시간을 맞아 젊은 금융인들로 붐볐다.
마틴 플레이스는 맥쿼리(Macquarie)그룹, 웨스트팩(Westpac), 호주연방은행 등에 둘러싸인 '금융 1번지'다. 벤치에 앉아 아이팟을 들으며 혼자 샌드위치를 먹던 트레이더(trader) 로드 톰슨(Thompson·33)은 "실적평가 기간이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원래 점심시간을 느긋이 즐기는 호주인들이지만, 이날 마틴 플레이스의 뱅커(banker)들은 12시 30분쯤 되자 우르르 업무에 복귀했다.
맥쿼리, 호주뉴질랜드은행(ANZ) 등 호주 금융회사들은 요즘 공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맥쿼리는 최근 미국의 투자은행 폭스핏 켈튼과 트라이스톤 등을 인수합병해 북미시장 진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ANZ도 작년에 말레이시아의 AMMB홀딩스, 영국 왕립스코틀랜드은행의 아시아 자산을 인수하며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쟁쟁한 회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정부 구제금융을 받기 급급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의 효과적 규제가 비결
호주무역진흥청(Austrade)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팀 하코트(Harcourt)에게서 호주 금융업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시아와의 무역이 경제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호주 금융감독 당국의 개입과 규제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금융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버텨낸 아시아 국가들과 주로 무역을 했기 때문에 타격이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호주의 5대 수출국은 일본(22.2%), 중국(14.6%), 한국(8.2%), 인도(6.1%), 미국(5.5%) 순이다. 하코트는 "탄탄한 경제 위에서 금융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금융 관리·감독은 중앙은행, 건전성감독청(APRA), 증권투자위원회(ASIC)의 주 임무다. 하코트는 "금융위기 당시 당국은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금융감독 강화 등 경기부양책을 과감히 적용했다"고 했다. 특히 금융업계의 건전성 감독을 위해 1998년 출범한 APRA가 제 몫을 해줬다는 평가다. APRA는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호주에서 비슷한 사태를 막기 위해 1년 동안 비상근무체제를 가동했다. 'APRA와 금융위기' 보고서에서 존 레이커(Laker) 청장은 "600명의 직원이 750개의 기업과 컨설팅하고 3200건의 분기 보고서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정부도 당국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내부자거래 등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막기 위해 APRA에 통화내용 감청 권한 부여까지 검토하고 있다 .하코트는 "결국 정부·감독기관·기업 모두 위기의식을 갖고 금융위기에 함께 대처했기에 오늘날 호주 금융업이 강성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