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민 기자

인터넷 콜센터 구축업체 '디지탈온넷'은 1993년 설립 이후 탄탄하게 성장했다. 국책연구소 연구원 출신이 설립한 이 회사는 과학기술부로부터 국산 신기술 인증을 받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많지는 않지만 8년 연속 흑자를 내며 생긴 현금도 차곡차곡 쌓았다. IMF 환란 직후인 99년부터 회사에 기회가 찾아왔다. 기업들이 자동화 콜센터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덕분에 이 회사는 매출이 2년 만에 두 배 넘게 불어나 2001년 232억원 매출에 2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런 안정적 성장을 바탕으로 이 회사는 2002년 초 코스닥에 입성했다.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는 이 회사의 매출이 2002년 245억원, 2003년 371억원으로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과 달리 이 회사는 상장 다음해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2003년 매출은 196억원으로 줄었고, IMF 한파 때도 없었던 적자가 처음으로 났다.

가장 큰 이유는 2002년 대규모 배당을 실시한 데다 새로 세운 자회사까지 큰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2007년 무렵에는 100억원대 매출에 이익은 거의 내지 못하는 기업으로 전락했다. 결국 이 회사 대표는 우회상장을 노린 교육업체 '아이넷스쿨'에 지분을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한때 3만원대까지 갔던 주가는 현재 7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상장이 독(毒) 되는 '역설'

갖은 한파를 이겨낸 신생기업들에 증시 상장은 꿈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막상 주식시장에 등장한 이후 봄날 벚꽃처럼 허무하게 시드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상장의 역설(逆說)이다. 본지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2000~2008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741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기업이 상장한 해를 정점으로 급격한 실적 감소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상장기업의 평균 순이익은 상장 직전연도 101억원에서 상장연도 116억원으로 증가했다가 상장한 다음해 78억원, 다다음해 61억원으로 급격히 악화됐다. 상장 이후 2년 만에 이익률이 반 토막 난 것이다. 게다가 이 집계는 상장 이후 지금까지 증시에 남아 있는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상장 폐지된 회사까지 합치면 이런 경향은 더욱 극명해진다. 이 기간 상장된 기업 중 150개 기업이 퇴출됐는데, 대부분 만성 적자로 인한 부도나 자본잠식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999년 상장한 KNS홀딩스는 98년 7억원, 99년 21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2000년 24억원 적자로 돌아선 후 내리 10년간 적자를 내다가 감사의견 거절로 결국 2009년 상장 폐지됐다.

성장통인가, 눈속임인가

상장의 역설이 벌어지는 이유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우선 기업의 성장 과정상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단계라는 분석이 있다. 기업공개(IPO)와 상장을 통해 외부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은 장기 성장을 위해 유형자산과 운영자금에 투자해 외형 확장에 치중하게 되는데, 투자의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일정 기간은 실적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장 후 2~3년간 성장통을 앓다 건강하게 회생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반도체 장비업체 아이피에스는 상장될 때까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2005년 매출 730억원, 당기순익 71억원을 올렸다. 그런데 상장 다음해부터 2년 연속 39억원, 188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내며 위기에 몰렸다. 2006년 LCD 장비사업에 진입하며 초기 시설비용과 연구개발비 투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부터 투자의 성과가 점점 나타나면서 다시 흑자로 전환했고, 올해는 LCD와 LED 업종의 호황 덕분에 1300억원대 매출과 200억원대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덕분에 2008년 말 1000원을 밑돌던 이 회사 주가는 최근 1만3000원대를 넘나든다.

반면 신생업체들이 IPO를 위해 실적을 조작한 탓에 상장의 역설이 벌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신규 상장기업은 그 전해 실적을 기준으로 상장 심사를 받기 때문에 매출은 미리 반영하고 손실은 미루는 식으로 실적을 부풀린다는 것이다. 코스닥 상장요건이 강화된 직후인 2004년과 2005년 상장한 기업들은 상장 후 실적 악화가 유독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 상장한 53개 기업의 합산 순이익은 상장 다음해 58%나 급감했고 다다음해에는 적자로 전환했다.

기업의 실적과 CEO의 자질 따져야

결국 수많은 신규 상장기업 중 옥석을 가려서 투자하려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회사인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대 황이석 교수(경영학)는 "과도한 차입으로 실적을 부풀리지는 않았는지, 연구개발비 감소 등 장기적 이익창출 능력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기업이익률·현금흐름·자산회전율 등이 경쟁사에 비해 낮은 기업 ▲과도한 부채를 사용한 기업 ▲비효율적 투자를 지속하는 기업 등은 IPO 이후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CEO의 자질도 신규 상장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데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대신증권 봉원길 팀장은 "수많은 중소기업을 탐방하면서 얻은 결론은 CEO가 성실한 기업이 성공한다는 것"이라며 "CEO가 상장 직후 배당이나 지분 매각으로 자기 잇속만 챙기거나 허황된 사업계획을 남발하는 기업치고 잘되는 기업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