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란 열과 성의를 다해 말과 문화·풍습을 익히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과 한국의 문화를 섞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수준까지 올라서야 합니다."
이원주(56) 케이리패션 대표는 한국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1980년대부터 필리핀에 접목, 연간 매출 4000만달러(약 443억원)를 올리고 있다. 그가 만드는 의류는 모두 바나나리퍼블릭·제이크루·앤테일러 등 미국 유수 브랜드에 주문 제작(OEM)으로 납품된다. 꾸준한 품질과 납기 준수율을 인정받았다.
그가 아무 연고 없는 필리핀에서 견실한 기업가로 일어서기까지는 말 못할 어려움이 있었다.
"1980년 의류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높은 인건비 때문에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할 사업은 아닌 것으로 봤어요."
그렇다고 배운 일을 버리기는 싫었다. 고민 끝에 그는 83년 필리핀 마닐라로 주거지를 옮기고 87년 의류 전문 하청업체를 시작했다. 그동안 모은 돈에 빚까지 25만달러를 투자한 '올인'이었다. 그는 "망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낮에는 공장을 지키고, 밤이면 서류를 처리했다"며 "숙소도 공장으로 옮기고 부인이 직원들 배식을 맡았다"고 했다.
노력 하나로 버티던 그의 사업은 두 번 큰 고비를 맞았다.
89년 필리핀 민주화 소용돌이 속에 자금난이 닥친 것. 9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의류 산업 전체에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첫 위기는 열심히 뛰어 이겨냈다.
"15만달러 신용장을 개설하려면 15만달러를 예치하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5만달러면 개설할 수 있었는데요." 그는 열흘 동안 매일 은행을 찾아가 매달렸다. "결국 담당자가 '조금만 더 써보라'고 힌트를 주더군요. 6만달러를 예치하겠다고 약속하고 신용장을 겨우 열었습니다."
두 번째 고비는 훨씬 더 힘들었다. 90년대 후반 아시아 의류 산업 전체가 위축돼 본질적인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웠다. 그는 2000년 무렵, 고도성장에 들어간 한국 전자업체들에서 답을 찾았다.
"LG전자가 혁신 활동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였더군요. 그래서 한국 컨설팅업체들을 불러 직접 배워보기로 했어요." 그 결과 수많은 낭비 요인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작업라인이 바뀔 때 제대로 부품이 전달되지 않으면 제품 손실(loss)이 일어나는데, 현장 직원들은 당연히 손실이 생기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
"현장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한국 기업들은 이런 낭비 요인을 줄여서 성과를 냈다'고 설득했습니다." 몇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성과가 나왔다. 그는 "눈에 보이는 생산성 향상만 30%가 넘었다"며 "다른 업체와 확실히 비용 구조를 차별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지'의 경험과 한국의 노하우를 결합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한국 기업들도 이제 세계적 노하우를 갖고 있는 만큼, '한국적 현지화'가 해외 진출 기업인에게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