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풍선 10개를 찾아라. 미국 전역에 흩어진 10개의 빨간 풍선의 정확한 위치를 가장 먼저 찾는 팀에게 4만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2009년 12월 1일 미국 국방부 이벤트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아니 국방부에서 풍선 찾기 놀이를 벌이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실화다. 이 이벤트는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미 국방부 개발 부서들 중에서도 가장 최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방위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DARPA)'에서 인터넷의 정보 확산의 속도와 정확도를 실험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었다. DARPA는 인터넷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한데, 이번 이벤트도 인터넷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행사이기도 했다.

■빨간 풍선을 찾아나선 MIT의 천재들

DARPA 제공

12월 5일 아침, 경기 시작 직전 DARPA는 비밀리에 미국 전역 공공장소에 지름 2.5미터의 빨간 공 10개를 설치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광장엔 아침 안개를 헤치고 커다란 공이 하늘로 올랐고, 플로리다의 무더운 햇살 사이로도 떠올랐다.

이벤트에 응모한 팀은 모두 4000개. 그들은 다양한 방법과 인터넷 기술을 동원해 풍선 10개를 찾는 도전을 펼쳤다.

그럼 우승팀이 10개의 풍선을 다 찾는 데 걸린 시간은? 애초 DARPA는 최대 9일 정도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승의 영예를 안은 MIT 팀은 불과 9시간 남짓 만에 해냈다.

비결은 바로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한 '집단지성'이었다. MIT팀은 정보 트래픽이 많은 사이트와 블로그에 풍선 찾기 시합 소식을 알리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서포터들을 모집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시도한 방법이었다.

MIT팀이 남달랐던 것은 '상금 가지치기'라는 인센티브 방식을 창안,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는 점이다. 비록 장난기 어린 이벤트성 행사였지만, MIT팀의 시도는 요즘 많은 기업들이 고민하는 소셜 네트워크와 이를 통한 수익모델 창조라는 물음표에 새로운 희망의 풍선을 띄우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MIT팀의 성공 방정식을 들여다보자.

'상금 가지치기'란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공을 데이비드가 찾았다면 데이비드는 사례로 2000달러를 받는다. (그림 참조) 그런데 데이비드는 이 공 찾기 이벤트를 트위터에서 팔로(follow)하는 캐롤이란 사람이 보낸 트위터로 알게 되었다. 그 대가로 캐롤 또한 데이비드가 받은 상금의 절반인 1000달러를 받는다.

캐롤은 밥이 보낸 문자 메시지로 풍선의 위치에 대한 중요 정보를 제보받았으므로 풍선을 찾는 데 일조한 밥 또한 캐롤이 받은 상금의 반인 500달러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밥에게 풍선찾기 행사를 페이스북으로 알려준 앨리스는 밥이 받은 상금의 절반 액수인 250달러를 받는다. 결국 데이비드-캐롤-밥-앨리스로 이뤄진 네 명의 연결 고리를 통해 이 공을 찾을 수 있었고, MIT팀은 이 공 하나를 찾는데 총 3750달러(2000+1000+500+250)의 비용이 든 셈이다.

그렇다면 풍선을 찾는 데 수십, 수백 명의 연결고리가 걸렸다면 MIT팀이 지불해야 할 돈은 기하급수로 늘어날까? 아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걸려 찾아도 수학의 극한 개념을 이용해 계산하면 공 하나에 4000달러는 넘지 못한다. (고1의 극한 수학만 알면 간단히 계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통해 10개의 공을 찾는 비용은 1등 상금인 4만달러를 결코 넘을 수 없다. 연결 고리 마지막 제보자에 2000달러를 제시한 이유가 바로 이 수학의 극한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MIT팀이 제시한 정보 공유의 인센티브는 인터넷을 통해 강력한 확산 작용을 펼쳐 빠른 시간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집단지성의 유토피아와 금전적 인센티브의 자본주의가 만나다

MIT팀이 보여준 첫 번째 희망의 메시지는 바로 집단의 강력한 힘이다. 한 개인의 힘은 보잘 것 없지만, 수많은 개인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집단지성으로 표현되는 개인이 모여 집단의 강력한 힘을 이룬다는 개념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나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창조해 냈다.

하지만 기업은 많은 개인이 서로 협력해 함께 목표를 이룬다는 것이 유토피아적인 아이디어이지만, 지속적인 사업으로 영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의 경우 사이트를 관리하고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을 MIT팀은 보여줬다.

MIT팀은 공을 찾는 이에게 2000달러를 준다는 상금을 내걸었다. (물론 MIT 팀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경우) 하지만 이런 단순한 금전적 보상에는 문제가 있다. 10개란 공은 한정돼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먼저 찾으면 내가 공을 찾을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결국 서포터들은 서로 돕는 게 아니라, 서로 경쟁하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수 있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선택이나 결과가 내 결과에 영향을 미쳐 상대방의 승리가 곧 나의 패배인 경쟁 관계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각 개인이 서로 도와 거대한 지성을 창조해야 하는 집단 지성에 반하는 구조다.

MIT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요 정보를 제보한 사람에 대해서도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 게임에서 한 개인이 홀로 풍선을 찾아낼 확률은 매우 낮다. 따라서 상금으로 제시된 2000달러의 일부라도 받으려면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이 게임 정보를 공유해 자신이 직접 찾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소개한 사람이 찾도록 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이익의 일부라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강한 인센티브로 작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금 가지치기를 통한 인센티브가 MIT팀을 서포트하는 수많은 군중들로 하여금 서로 경쟁관계가 아닌 공조관계란 긍정적 사슬을 형성해 냈고, 이 때문에 서포터들이 미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집단이 협력한다는 집단 지성의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와, 잘 고안된 금전적 인센티브 구조가 결합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결과를 창조해 낸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집단을 경쟁이 아닌 공조의 관계로 창조해 나가는 실제 사례는 애플 아이폰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애플은 자사의 기술을 일부 공개해 개인 개발자 누구나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수익을 적절히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개발자의 강한 개발 의지에 불을 지폈다.

이는 개발자와 애플이 윈-윈하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개발자들끼리도 윈-윈하는 전략이 된다. 이는 전 세계 개발자들을 애플의 아이폰을 더 편하고 더 나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애플 서포터들로 변모시켰다. 마치 MIT팀이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서 DARPA의 이벤트를 접한 이들을 자신의 서포터로 변모시킨 것과 같다.

현대 비즈니스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맞이하고 있다. 기업 간의 경쟁을 전쟁에 비교한다면 과거는 강력한 리더십 아래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전투에 임해 뚜렷한 전선을 사이에 두고 맞서 싸움을 벌이는 형태였다. 적도 분명하고 전선도 명확했다. 하지만 현대 비즈니스는 전선도 없고 적과 동지 구분도 모호한 일종의 게릴라전과 같다. 수많은 고객이 한편으로는 우리 회사 개발자이자 또 한편으로는 경쟁사 홍보부장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서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MIT팀이 찾은 것은 단지 풍선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찾은 건 바로 새로운 환경에 기업이 대처해야 할 새로운 비전과 그 가능성이었다. 한국 기업들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하늘 높이 빨간 풍선을 날릴 날을 기대해 본다.

장영재는

보스턴대 우주항공학과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와 박사 그리고 MIT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의 비즈니스 운영 기획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원가 절감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최근 세상을 움직이는 경영 과학의 힘을 일반인의 눈높이로 풀어쓴 〈경영학 콘서트〉(비즈니스북스)란 책을 썼다. 저자 블로그 http://jangyoungja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