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영국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가 펴낸 '털 없는 원숭이'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다. 192종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 없는 원숭이가 그것이다."

현생인류가 털 없는 원숭이가 된 이유와 시기에 대해 여러 이론이 제안됐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사람 몸에서 털이 사라진 이유를 가장 그럴 법하게 설명한 것은 호주 인류학자 레이먼드 다트(1893~1988)의 사바나(대초원) 이론이다.

원시 인류의 수컷이 열대지방의 초원에서 사냥할 때 짐승을 쫓느라 몸에 열이 많이 났기 때문에 체온을 낮추기 위해 온몸에서 털이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사바나 이론은 50년 이상 절대적 권위를 누렸지만 약점이 없지 않았다.

우선 원시 인류의 암컷은 사냥을 하지 않아 체온을 낮출 필요가 없었으며 오히려 밤에는 털이 없어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사바나 이론의 허점을 파고든 이론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1960년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자 앨리스터 하디는 수생 유인원 가설(aquatic ape hypothesis)을 내놓았다. 500만~7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얕은 물에서 먹거리를 채집하는 반(半) 수중 생활을 했으며 피부의 털은 물속에서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에 고래 같은 수생 포유류처럼 털이 없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아 사바나 이론의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2003년 영국 리딩대 진화생물학자 마크 페이겔은 기생생물 이론을 제안했다. 털은 이처럼 기생하는 곤충에게는 안전한 서식처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 몸에서 털이 없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기생생물 이론 역시 사바나 이론만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 몸에서 털이 사라진 이유 못지않게 털이 없어진 시기에 대해서도 여러 이론이 제안되었다.

2004년 미국 유타대 유전학자 앨런 로저스는 '시사인류학(Current Anthropology)' 2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120만년 전 인류가 털 없는 원숭이가 됐다고 주장했다. 2007년 미국 기생충학자 데이비드 리드는 사람 머리카락과 거웃에 서식하는 이의 유전자 분석 결과 330만년 전 털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람의 머리, 겨드랑이, 불두덩에 털이 남아 있는 이유도 과학적 설명이 시도되었다. 머리털은 햇볕으로부터 두개골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겨드랑이털과 음모는 페로몬을 널리 퍼뜨리는 기능을 갖고 있다.

다른 개체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통틀어 페로몬이라 한다. 페로몬은 동물의 번식 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령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는 연인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인류학자 니나 재브론스키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월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린 글에서 털이 없어져 열이 발산됨에 따라 온도에 가장 민감한 기관인 뇌가 극적으로 확대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털이 사라진 피부에 화장을 하거나 문신을 새겨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 털 없는 피부가 지능과 문화의 발달에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