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경기 하강기나 주가 조정기에는 '경기 방어주'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다. 경기 방어주란 음식료·제약·통신·유통 등 경기변동에 둔감한 업종을 말한다. 건설이나 금융 등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과 달리 생필품적 성격이 있어 경기가 나빠져도 기업 실적에 큰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하순 이후 주식시장이 조정에 접어들면서 증권업계에서는 경기 방어주 중심으로 순환매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경기선행지수가 올 1분기를 정점으로 꺾일 것이라는 예상도 이런 전망을 거들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을 보면 방어주가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모습이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1월 21일 1722포인트를 찍고 나서 3.6% 하락하는 동안 전기가스·통신·의약품업종 지수는 4~10%나 빠졌다. 최근 증시에서 방어주가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뭘까.

미리 너무 힘썼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이채원 부사장은 지난 1월 KT한국전력의 주가가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며 "1년에 10%만 올라도 되는데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천천히 올라야 할 종목이 너무 단기간에 빨리 올라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내내 3만원대에서 움직이던 KT 주가는 연말 갑자기 스마트폰 바람을 타면서 5만원 넘게 날아올랐다. 2만~3만원대를 유지하던 한전 역시 원자력 테마를 타고 4만2000원대까지 올랐다.

대표적인 방어주로 꼽히는 한국가스공사도 연료비 연동제 호재에 힘입어 주가가 한 달여 만에 16%나 올랐다. 이처럼 상승기에 미리 힘을 쓰다 보니 저력을 발휘해야 할 조정기에는 정작 제대로 힘을 못 쓰는 것이다. KT는 지난 1월 28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신을 냈지만 이후 조정장에서 주가가 7.7%나 빠졌다. 오히려 코스피지수가 같은 기간 1.07% 상승으로 선방했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역시 올해 고점 대비 주가가 각각 8.9%, 11.9% 빠졌다.

토러스증권 이원선 연구원은 "전통적인 방어업종인 통신과 유틸리티 섹터가 직전 상승장에서 시세를 분출하는 바람에 방어성향이 약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각종 변수도 발목

각종 변수도 방어주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정부의 물가 상승 억제 방침에 따라 연료비 연동제 시행이 연기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케이스다. 제약업종은 정부의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에 따라 약값이 인하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의약품지수는 7.5% 하락해 건설업종과 함께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음식료업종 역시 곡물가격 하락이라는 호재에도 불안정한 환율 흐름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코스피지수를 밑도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하이투자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고용이 개선되는 2분기 이후에나 음식료업종의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종 방어주를 찾아라"

전통적인 방어주가 제대로 된 방어주 역할을 못하면서 새로운 방어주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른바 성장성과 하방경직성을 겸비한 종목들이다. 이원선 연구원은 "이번 조정은 수요 증가가 제한된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수요 창출에 대한 기대가 높고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 위주로 방어주를 골라야 한다"면서 삼성전자·LG패션·CJ제일제당·제일기획·아모레퍼시픽 등으로 구성된 방어주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우리투자증권은 경기선행지수 하락기의 투자 종목으로 기아차·한진·LG디스플레이·대한항공·KT 등을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