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는 지난달 27일 아이패드(iPad)를 공개하면서 전자책과 넷북을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잡스는 세계 1위의 전자책인 아마존의 e-리더(전자책 단말기) '킨들(Kindle)'을 겨냥, "아마존이 e-리더의 개척자로 엄청난 일을 했지만, 우리가 아마존의 어깨 위에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전자대만의 아수스 같은 PC업체들의 주력 제품인 넷북(Netbook·휴대용 소형PC)에 대해서는 "넷북은 기존 노트북PC보다 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은 게 하나도 없다"고 혹평을 했다. 그의 독설은 곧 아이패드를 통해 e-리더와 넷북 시장을 한꺼번에 장악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언론들도 잡스의 '아이패드'에 '넷북 킬러(killer)'와 '킨들 킬러'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지만 넷북과 e-리더 진영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들 진영에서는 "아이패드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업무용으로 쓰기에는 성능이 너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아마존 측에서는 "킨들보다 2배가량 비싼 아이패드가 독서용으로 특화된 킨들을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애플은 셜록 홈스처럼 빨간 머리 클럽의 비밀을 간파한 것일까?"지난달 27일'아이패드(iPad)'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가 아마존의 '킨들'을 지나쳐가고 있다. 킨들에는 코넌 도일의'빨간 머리 클럽(The red-headed league)'이란 추리소설이 펼쳐져 있다. 소설에서 명탐정 셜록 홈스는'빨간 머리 클럽'이 은행을 털려는 범죄자의 연막술이라며 단번에 문제를 해결했다. 잡스도 킨들이 장악한 e리더 시장을 뺏을 비책을 마련한 것일까.


아이패드, 킨들 킬러로 부상하나

'아이패드'는 무게 680~730g에 9.7인치(24.63cm) 화면을 가진 태플릿PC다. 태플릿PC는 스마트폰과 노트북PC 중간 정도의 크기에 손가락으로 화면을 만져 조작하는 제품이다. 아이패드는 아이폰을 그대로 큰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컴퓨터 관련 제품의 핵심인 운영체계(OS)로 아이폰 운영체계를 쓰고, 인터넷 접속프로그램인 웹브라우저도 애플의 '사파리'다. 애플 앱스토어와 아이튠즈에 있는 응용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도서·신문·잡지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독자적인 전자책 제공 공간 '아이북스(iBooks)'도 개설했다.

아이패드는 일단 아마존 중심의 기존질서를 흔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당장 미국 5대 출판사 중 한 곳인 맥밀란이 아마존의 '9.99달러' 가격 정책, 즉 전자책 한 권당 무조건 9.99달러에 판매하는 가격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애플을 의식한 아마존은 맥밀란의 가격 인상 요구에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노던필름&미디어'라는 기업은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펀드 조성을 발표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도 온라인 사이트에 아이패드 코너를 별도로 마련할 만큼 관심을 쏟고 있다.

애플'아이패드'


물고 물리는 태블릿PC와 전자책

아이패드를 계기로 올해 비슷한 형태의 태블릿PC 출시가 잇따를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HP, 대만 PC기업들과 손잡고 태블릿PC를 출시할 예정이며, 국내의 삼보컴퓨터도 상반기 중 태블릿PC를 출시한다. 3월 미국 출시 예정인 아이패드 판매가 순조로울 경우, 태블릿PC는 넷북처럼 새로운 테마를 형성하며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태블릿PC는 컬러와 흑백 전환이 가능한 LCD 화면에 강력한 컴퓨팅 기능이 강점이다. 동영상 재생이나 인터넷 검색, 이메일, 엔터테인먼트 등 PC에서 쓰는 웬만한 기능은 그대로 구현된다. 최근 UI(사용자환경) 트렌드인 풀터치 스크린을 제공하며 반응 속도 역시 전자책보다 훨씬 빠르다. 반면 전자책은 별도 전자펜이 있어야 간단한 터치 입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읽기만을 놓고 보면 의견이 엇갈린다. 전자책은 보통 1500권 분량의 책을 저장할 수 있으며, 배터리도 한 번 충전하면 일주일은 그냥 쓸 수 있다. 전자책은 별도 광원이 필요 없는 전자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고 야외에서도 책을 읽기 편하다. 가격 역시 아이패드보다 50% 이상 싸다. 가장 비싼 킨들DX가 489달러이며, 화면 6인치의 킨들2는 259달러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3세대 이동통신망에 무료로 접속할 수 있다. 반면 아이패드는 이동통신 접속 기능을 갖춘 최저가 모델이 629달러이고, 여기에 월 데이터 통화료 14.99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용 태블릿PC vs. 업무용 넷북

어떤 면에서는 태블릿PC가 전자책보다 휴대용 노트북PC인 넷북과 겹치는 영역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애플의 팀 쿡 COO(최고운영책임자)가 "넷북은 필요없는 전자기기"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스티브 잡스도 아이패드가 영화와 TV·게임을 즐기면서 동시에 간단한 업무도 처리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디바이스(device)'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야외 활동에서는 아이폰을 쓰고, 집·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노트북PC를, 거실 소파나 침대에 쉬면서 간단한 업무를 하거나 오락거리를 찾을 때에는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 그의 구상대로라면 아이패드가 젊은층의 휴대용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인기를 얻고 있는 넷북에 상당한 위협거리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넷북 지지자들은 아이패드가 기능면에서 넷북에 크게 뒤처진다고 반박한다. 아이패드가 '멀티태스킹(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데다 USB(휴대형 메모리) 연결단자나 카메라 같은 기본 기능도 장착되지 않았다는 것. 또 사용자에게 친숙한 마우스가 없어 작업능률이 떨어지고, 위치정보시스템(GPS)이 없어 내비게이터로도 활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 IT사이트인 C넷은 "애플이 넷북의 기능을 폄하했지만, 실제로는 아이패드가 기능면에서 넷북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평가했다.

콘텐츠 파워 강해진다

인터넷 검색 기업에 밀렸던 신문·잡지·출판사 등 콘텐츠 기업들이 아이패드와 킨들 대중화를 계기로 입김이 더 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킨들에 맞서 독자적인 전자책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은 2일(현지시각) 분기실적 발표 후 "콘텐츠가 왕이라는 것으로는 모자란다. 콘텐츠는 모든 전자매체 시장의 황제"라고 큰소리를 쳤다. 머독 회장은 계열 자회사에서 만든 3D 영화 '아바타'의 세계적인 성공에 고무된 듯, "콘텐츠에 대한 논란은 모두 끝났다"면서 "더 커진 TV나 태블릿PC, 전자책, 그리고 더 복잡해지고 있는 각종 모바일 기기도 콘텐츠가 없으면 빈 수레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IT전문사이트 B넷도 "콘텐츠와 기술의 힘겨루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면서 "중요한 것은 구글 같은 기술기업의 힘이 과거만 못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구글·아마존·애플 같은 기술 기업들은 자신의 제품을 차별화하는 핵심요소인 콘텐츠 확보를 위해 경쟁이 불가피한데다 콘텐츠 기업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식으로 강경하게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