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유력한 인수자로 지목됐던 한화와 GS그룹이 3일 하이닉스 인수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하이닉스 투자에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곤경에 처한 하이닉스 채권단(주주협의회)은 남아있는 대주주 지분을 조금씩 분할해 내다파는 블록세일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블록세일은 하이닉스를 주인없는 회사로 전락시켜 회사경쟁력만 약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하이닉스 매각 작업이 부진한 이유는 인수자금이 3조~5조원으로 막대한 데다, 지난해 효성그룹의 무리한 인수 시도 실패의 후유증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막대한 자금과 '효성 실패'의 후유증

하이닉스는 1999년 LG반도체가 정부의 대기업 빅딜(big deal) 정책에 따라 현대그룹으로 넘어가 현대전자와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2000년 유동성 위기로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2001년 말부터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당시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를 받아왔다. 하이닉스는 이후 4년 만에 채권단 공동관리를 조기 졸업하고, 지난해 4분기에는 사상 최대인 2조7990억원의 매출을 내는 등 눈부신 회복세를 보여왔다. 2008년에는 PC용 D램 부문에서 세계 2위(19.4%), 플래시메모리 부문에서 세계 3위(12.3%)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하이닉스가 정상 기업으로 회복됐다고 판단한 하이닉스 채권단은 지난해 9월부터 하이닉스의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채권단 지분(28.07%) 매각 절차를 밟아 왔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인수 의사를 밝혔던 효성그룹이 두 달 만에 인수 의사를 철회한 이후, 지금까지 하이닉스를 사겠다고 공개적으로 나선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지난달 29일 마감한 2차 매각 시도에도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이 없었다. 이후 한화그룹과 GS그룹이 하이닉스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3일 오전 "하이닉스에 관심이 없다"는 공시까지 내며 소문을 부인했다.

하이닉스가 M&A(인수·합병) 시장에서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자금 부담 때문이다. 하이닉스 인수를 위해서는 지분 매입 규모에 따라 1조~3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인수 후에도 해마다 2조원씩 시설투자 비용이 들어간다. 글로벌 경기 회복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 업종에 기업들이 수조원의 자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M&A 업계에서는 또 다른 이유를 들고 있다. 외국계 A투자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9월 하이닉스의 첫 매각 시도 때만 해도 하이닉스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대기업과 외국계 투자자들이 효성그룹이 하이닉스 인수에 실패한 이후 모두 '하이닉스에 관심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효성은 부인하고 있지만 다른 기업들은 효성이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져야 하이닉스 인수전에 나설 수 있다는 분위기이다.

하이닉스의 미래는

하이닉스 채권단은 현재 "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최소 지분 15%만 남기고 나머지 지분을 조각조각내 국내외 투자자에게 분할 매각하는 블록세일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블록세일 방안에 대해서는 우려가 많다. 반도체 기업은 업종 속성상 주인이 있어야 과감한 기술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해 갈 수 있는데, 하이닉스가 계속 주인 없는 회사로 유지되면 경쟁력 유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M&A업계에서는 옛 주인인 LG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룹의 사업구조가 하이닉스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메모리 반도체가 핵심부품인 휴대폰·PC·가전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LCD(액정화면) 생산기술은 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기술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LG그룹은 하이닉스반도체의 전신인 LG반도체를 직접 경영한 경험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LG그룹은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단이 LG그룹이 거부 못할 파격적인 제안을 하지 않는 한 LG그룹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