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가 훌쩍 넘는 노란색 타워 크레인이 건설 자재를 쉼 없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땅에 단단히 박힌 육중한 콘크리트 원통에 인부들은 그물을 짜듯 철근을 촘촘히 꽂아 넣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3·4호기 건설현장의 모습이다. 이곳에선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되는 한국 신형 원전(APR1400)이 처음 건설되고 있다.

위로 60m쯤 올라간 3호기는 2013년 9월 완공 예정으로, 돔(dome·반구형 지붕)을 제외한 몸통 부분이 거의 모습을 갖췄다. 2014년 완공될 4호기도 10m쯤 올라와 있다.

신고리 제2건설소 품질검사팀 백정석 차장은 "건설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유럽과 중동 전문가들이 몰려 온다"고 말했다.

이번에 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하면서 예상되는 수입은 운영비 등을 포함해 약 400억달러(약47조원).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총수출액(310억달러)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때문에 원전은 새 주력 수출품으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쓸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치열한 글로벌 원전 시장 쟁탈전에서 한국전력은 국내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원전 수주 등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원전 3·4호기 건설현장에서 기술자들이 작업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곳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되는 한국 신형원전(APR1400)이 처음 건설되는 곳이다. 한 기술자는 "건설현장을 찾는 외국인 전문가들이 훌륭하다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고 말했다.

◆'시간과의 전쟁'

원자력 발전소에서 흔히 보는 원통형 건물은 격납건물(RCB·Reactor Containment Building)이라고 불리는 핵심시설인데, 그 속에 원자로가 들어간다. 공사가 한창인 신고리 3·4호기 격납건물 옆에는 격납건물과 같은 48m 지름의 커다란 철제 원통이 놓여 있었다.

백 차장은 "땅에서 원통을 만들고, 그걸 블록처럼 쌓아 올려 격납건물을 올린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원통을 2단씩 쌓아 올렸지만, 신고리 3·4호기는 3단씩 쌓아 올린다. 그 덕분에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신고리 원전은 공사기간을 59개월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를 57개월 이내로 단축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이번에 UAE가 한국 원전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짧은 공기(工期)'였다.

신고리 3·4호기 공사를 맡은 기업은

현대건설

등 국내 업체. 현재 공정률은 29.97%로 애초 계획된 27.94%를 앞질렀다. 현대건설은 1971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수많은 원전 공사에 참여하며 쌓은 노하우를 발휘하고 있다. 격납건물 속에 들어가는 원자로는

두산중공업

이 국내 기술로 생산해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본부의 최재석 과장은 "날씨만 도와준다면, 공기를 최대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리 3·4호기 바로 옆에 있는 1·2호기는 거의 공사가 마무리단계다. 1·2호기에는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이 들어간다. 1호기는 올 12월 가동될 예정으로 내부에 보온재를 넣는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이다.

◆주(主)제어실 핵심 시스템도 국산화

신고리 원전 건설현장에서 차를 타고 5분쯤 달리자 고리 원전 1~4호기가 눈에 들어 왔다. 3호기 주제어실에 들어서자 불이 켜진 수많은 램프가 보였다. 주제어실 대형 정보표시판에선 전력생산과 안전에 관한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무인 카메라와 연결된 주제어실 모니터로는 원전의 어느 곳이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방사능 유출 등 사고가 발생하면 램프의 색깔이 붉은색으로 변해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

APR1400에 들어가는 주제어실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다. 기존의 아날로그 제어방식을 벗어나 모든 운전원이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발전소 정보를 관리 감독할 수 있다. 원전 운영을 책임지는 한수원은 안전성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원전 1기당 불시정지 건수는 0.3건으로 미국의 3분의 1 이하다.

원전의 안전 운전을 담당할 APR1400 주제어실의 핵심 설비인 MMIS(Man Machine Interface System·원전 계측제어 시스템)는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 MMIS는 원전의 상태감시와 제어 등을 담당하는 기술로, 지금까지 국내에 건설된 원전에는 모두 외국 회사가 제작한 MMIS가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

등이 참여해 이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환경까지 고려해 설계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 앞에는 방파제가 설치돼 있다. 건설 중인 신고리 1·2호기 앞에도 방파제가 있다. 폭풍우가 몰아쳐 파도가 거셀 때도 원전에 사용할 냉각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신고리 3·4호기는 방파제가 필요 없다.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파이프가 수심 50m 아래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굴곡진 동해안의 해안선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냉각수를 바다에 배출하는 파이프 역시 수심 50m 깊이에 설치돼 있다. 원전 주변 수온 상승을 최소화시키려는 조치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도 발전했다. 2008년 국산화에 성공한 '방사성 폐기물 유리' 기술은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의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나서 이를 유리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다. 기존 처리방식과 비교하면 방사성 폐기물의 부피를 약 20분의 1로 줄일 수 있게 됐다.

OPR1000은 최적의 원전이란 뜻의 'Optimized Power Reactor'의 머리글자에 1000㎿를 뜻하는 '1000'을 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원전 기술자립을 위해 당시

[미국]

회사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영광 3·4호기를 건설했다. 이때 우리 기업들이 하도급업체로 참여하면서 기술 자립도가 60%에서 95%로 올랐다. 당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2005년에 첫 토종 원자로라 할 수 있는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을 개발했다. OPR1000이 처음 설치된 것은 울진 3호기(1998년 8월 가동)이다.

APR1400은 OPR1000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크게 높인 개량형 제품이다. 개선된 원전이라는 뜻의 'Advanced Power Reactor'의 머리글자를 땄다. OPR1000과 비교해 발전용량이 40% 늘었고, 사고 발생 확률은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하는 등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