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기 화성에 소재한 한미약품 연구소. 연구원들이 신약 개발과 관련된 업무를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외모를 보면 영락없는 우리나라 연구원이어서 마치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국내 연구원과 북경한미약품에서 파견한 중국인 연구원이 영어로 신약 개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북경한미약품은 한미약품이 중국 베이징에 설립한 자회사로 중국 내에서 연구·개발, 허가, 판매를 모두 수행한다. 한미약품이 신년 초 내건 글로벌화가 연구소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화성 한미약품 연구소에서 국내 연구원들이 중국인 연구원(맨 오른쪽)과 함께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세계 시장 진출은 불가피, 다국적 제약사와는 차별

한미약품 연구소에는 북경한미약품이 공동 연구를 위해 파견한 16명의 중국 연구원이 있었다. 중국 연구원들은 2~3개월씩 연구소에 상주하면서 두 곳의 연구 역량을 결집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인 연구원들은 세계 시장을 능동적으로 공략하는 한미약품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한미약품 연구소 김맹섭 소장은 "한·미 FTA 체결로 국내 제약사가 국내 시장에서 과거의 방식대로 제네릭(특허 만료가 된 신약의 단순 복제약)을 제조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그렇다고 매출 수십조원의 다국적 제약회사보다 자금력, 연구 역량이 달리는 국내 제약사가 동일한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만의 틈새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김 소장의 설명이다.

한미약품이 찾은 틈새시장은 플랫폼(platform) 변환 전략이다. 약 자체를 개발하기보다는 약이 적용되는 환경(플랫폼)을 개선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과거 국내 전자회사들이 세계 시장 진입을 위해 밟았던 궤적과 유사하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은 원천 기술 확보보다는 원천 기술 조합으로 시장 친화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전략을 택했다. 국내 전자회사들은 이런 전략으로 세계 시장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한미약품이 구사하는 플랫폼 전략은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약에 새로운 물질을 부착해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복용해도 약효가 지속하는 식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면 한미약품이 개발한 물질을 덧입혀 새로운 약으로 탈바꿈시킨다. 한미약품은 이런 기술을 '랩스커버리(Lapscovery·약효 장기 지속 기술)'라 부른다. 가장 먼저 항암제에 이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이 기술이 가지는 잠재력은 매우 크다. 예컨대 2001년에 출시된 항암치료 보조제인 '뉴포젠'은 8년이 지나도 시장 규모가 1.5조원대로 정체돼 있지만 복용 주기를 하루에서 일주일로 늘린 개선된 '뉴라스타'는 7년 만에 3.6조원대의 매출로 증가했다. 한미약품은 바이오신약(단백질 같은 생체물질로 만든 신약)의 복용 주기를 늘려 주는 물질을 개발해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김맹섭 소장은 "현재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한 약들이 미국·한국의 임상을 통과해 수년 내에 시장에 출시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집토끼, 산토끼를 모두 지킨다

한미약품은 랩스커버리라는 산토끼를 얻기 위해 기존의 집토끼를 버리지 않을 방침이다. 한미약품의 집토끼는 개량 신약·제네릭이다. 개량 신약은 신약과 약효 성분은 같지만 복용방법이나 약물 보호 성분이 다른 약으로 단순 복제약인 제네릭과 달리 특허로 보호받고 약가도 높게 책정된다. 그렇지만 연 6000억원대 매출로 국내 제약사 2위권인 한미약품에 어울리지 않는 제품군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꾸준한 현금 창출 품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우리의 강점인 제네릭·개량 신약의 출시를 지속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