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戰後) 일본 경제성장의 상징이었던 일본항공(JAL)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19일 일본 현지 언론들은 JAL이 도쿄지방법원에 회사갱생법적용(법정관리)을 신청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1년 전 주당 200엔을 웃돌던 JAL 주가는 19일 5엔으로 마감하며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지난 13일에는 완전감자(減資)와 상장폐지 가능성이 제기되며 하루 만에 주가가 81%(37엔→7엔) 폭락했다. 일본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JAL이 이처럼 몰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JAL의 몰락이 한국경제에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추락하는 JAL
JAL은 1951년 필리핀에서 빌린 여객기 1대와 직원 39명으로 출발해 직원수 4만8900명(2009년 4월 말 현재)을 거느린 세계적 항공사로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자존심으로까지 불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날개가 부러진 채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JAL은 2008년 6억3000만달러 적자를 냈다. 2009년 상반기에는 13억6000만달러로 적자가 늘어났다. 고유가로 비용은 증가한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무역량이 급감한 게 직접적 이유였다. 신종플루 영향으로 해외 여행객이 줄어든 것도 몰락의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JAL뿐만 아니라 세계 항공업계의 공통된 악재였다. 유독 JAL만이 사실상 부도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JAL 내부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주인없는 JAL
JAL은 1987년 민영화됐다. 하지만 무늬만 민영화에 불과했다. 2009년 9월 말 현재 최대주주 지분율은 2.98%에 불과하다. 주인없는 민영화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민영화 이후에도 정치가와 관료들이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대대로 부사장 자리에는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가 내려왔다. 정부가 JAL 이사회를 주무르는 것을 빗대 'JAL 이사회는 일본 국토교통성 8층'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JAL에 대한 정부 간섭은 심했다.
정치인들이 선심성 정책으로 지방에 공항을 대거 만들었고, JAL은 경제성과 상관없이 정치적 이유로 신규 노선 취항에 나서야 했다. 지방 공항이 늘수록 적자노선이 늘어났다. 이는 직접적인 경영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9년 상반기 JAL의 국내선 탑승률은 59.9%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의 탑승률이 70%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 여객기를 텅텅 비운 채 운항해온 셈이다.
1970년에 만들어진 조종사 승무시간 보장제도(실제 승무시간과 관계없이 65시간 승무수당 지급)는 인건비 부담을 늘렸다. 다른 항공사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대형 항공기 보유비중이 높았지만 어떤 경영진도 스스로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경영이 어려울 때는 공적자금을 받아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외국 경쟁사들은 경영효율성을 높이며 자체 생존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JAL은 외국항공사 운항 점유율 제한, 저가항공 출범 규제 등 정부의 특혜에 힘입어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적자도 늘어났지만 JAL 경영진들은 '나라가 뒤를 봐준다'라는 속담처럼 도산할 염려가 없다는 안이함에 젖어들었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JAL은 좀비기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망가진 기업, 일본 경제의 축소판"이라고 혹평했다.
◆노조에 발목잡힌 JAL
노동조합도 JAL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JAL 노조는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승무원과 지상근무자 등 1만여명이 가입한 최대규모인 JAL노조를 비롯해, JAL기장조합, JAL승무원조합, JAL 재팬(Japan)조합 등 8개가 난립해있다. 중·장년 사원이 노조를 주도하다 보니 경영이 악화되어도 구조조정이 불가능했다. 또 퇴직자 권력이 막강해 퇴직연금 부족액이 4000억엔에 달하는 등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쳐왔지만 퇴직연금을 깎을 수도 없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호성 연구원에 따르면 JAL의 퇴직연금 대비 자기자본 비율은 459%에 달해 미국 자동차 메이커 GM(제너럴모터스) 파산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JAL과 같은 퇴직연금제도를 갖고 있는 소니와 미쓰비시중공업은 각각 31%와 56%에 불과하다.
◆한국에는 반면교사
일본정부는 세계적 전자부품업체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에게 JAL 재건을 맡겼다. 공무원 때문에 망한 JAL이 아이러니하게도 민간 기업인에게 SOS를 친 셈이다. 일본 법원이 JAL의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이면 JAL은 7월까지 정상화계획을 법원에 제출하게 되고, 9월 완전감자와 3000억엔을 출자해 새로운 회사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전체 인력의 3분의 1 수준인 1만5000명을 감축하고 110개사인 자회사도 청산·매각을 통해 57개사로 줄이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현지 언론은 일본항공 정상화를 위한 부채 탕감 등으로 인해 일본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440억엔(5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호성 연구원은 "주식이 한 주도 없는 정부가 경영에 간섭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경영효율화보다는 자리보전에 급급했던 게 몰락의 가장 큰 이유였다"며 "한국경제도 JAL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원은 "정치가 기업에 개입하거나 노조가 경영에 개입하면 나타날 수 있는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