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파생상품 KIKO(키코)를 둘러싼 국내 중소기업들과 은행들과의 법정 분쟁이 세계적 석학들의 대리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Engle) 교수가 지난달 17일 "KIKO는 사기(詐欺)"라며 중소기업들 입장을 대변하는 법정 증언을 한 데 이어, 이번에는 파생상품의 선구자로 불리는 스티븐 로스(Ross) 미 MIT 교수가 방한, 법정에서 은행측 입장을 대변하는 반박 논리를 펼 예정이다.

KIKO는 환율이 일정 범위 사이에서 움직이면 중소기업이 유리한 가격에 외화를 팔 수 있도록 설계된 파생상품인데,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환율이 계약된 범위 밖으로 치솟는 바람에 많은 중소업체들이 손실을 입었다.

로스 MIT 교수(사진 왼쪽),엥글 뉴욕대 석좌교수(사진 오른쪽).

금융권 관계자는 18일 "파생상품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MIT 경제학과의 스티븐 로스 교수가 피고인 우리은행의 신청으로 오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두해 은행측을 대변해 증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출중소기업인 D사는 2008년 11월 "은행이 판매한 KIKO에 속아 투자했다가 부당한 손실을 봤다"며 우리은행과 외환은행 등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냈다. 로스 교수는 파생상품의 가격과 관련된 이론인 '차익거래가격 결정모형'을 체계화한 경제학자로, 최근 등장하는 대부분의 파생상품이 로스 교수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로스 교수는 현 시점에서 KIKO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며 "로스 교수가 KIKO의 원리와 무결성을 명쾌하게 입증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KIKO 소송은 연간 수조달러에 이르는 세계 파생상품 시장의 큰 관심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 17일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D사측에서 신청한 증인으로 나와 "키코는 어떤 경우에도 은행이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엥글 교수는 금융 시장의 돌발적 리스크(위험)에 대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양쪽의 논리 대결은 세기의 경제학 논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면서 "이번 논쟁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춤했던 파생상품 시장의 발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