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의 동반자였던 G20(주요 20개국)은 올해 새로운 경제적 도전을 시작한다. 바닥을 치고 솟아오르는 상승의 기(氣)를 품어 국운(國運)을 살리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다. 미래산업기술과 참신한 전략이 승리와 도약의 엔진이다. 조선일보와 LG경제연구원은 한국·미국·중국·일본·프랑스·러시아·인도·브라질 등 G20 주요 8개국의 미래산업을 현장 취재, 각국이 사활을 걸고 있는 'G20 신(新)기술전쟁'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난달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 쪽으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레 뮈로(Les Mureaux).
시내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이 마을에 세계적인 우주항공기업인 아스트리움(Astrium)의 발사체 제작 공장이 있었다.
정문에서 까다로운 신분 확인 절차를 마치고 들어가니 아파트 7층 높이의 거대한 회색 공장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유명한 우주행 버스인 '아리안5호'를 만드는 곳이다. 아리안5호는 10t급 위성을 지구에서 3만6000km 떨어진 정지 궤도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는 높이 50m, 무게 780t의 거인 발사체. 매년 이곳에서 7대가량 생산된다.
공장에 들어선 순간 높이 30m, 지름 5.4m가 넘는 커다란 흰색 발사체 4대가 시야를 압도했다. 중동과 아시아·남미 등 위성을 우주로 쏘아 보낼 능력이 부족한 국가나 기업들이 발주한 것들이다. 생산라인 한쪽에서 올해 3월에 우리나라의 통신해양기상위성을 쏘아 올릴 로켓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장 바로 옆에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은 레 뮈로를 로켓 기술력의 산실로 만든 '핵심 요건'이다. 발사장이 위치해 있는 남미의 기아나우주센터까지 무거운 로켓들을 운반하려면 배를 띄울 수 있는 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3만6000km 상공에서 지구와 같은 속도로 도는 정지궤도 위성은 기아나우주센터처럼 적도 근처에서 쏘아 올려야 연료비 절감 등 경제적 측면에서 유리하다. 기아나우주센터는 상업용 위성발사 전문업체인 아리안스페이스(Arianespace)가 운영하고 있다.
우주산업은 인간의 손을 기다리는 신천지(新天地)다. 매년 10% 이상씩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무궁무진한 성장 잠재력을 뽐낸다. 지난해 우주산업이 창출한 세계 시장 규모는 약 1444억달러(169조원). 글로벌 금융위기란 악재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19%나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주'만큼 무한한 성장산업을 둘러싸고 선진국들은 국운(國運)을 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는 우주산업의 상업화 측면에서 봤을 때 전통 강호인 미국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프랑스가 내세우는 간판 로켓인 '아리안5호'는 전 세계 상업용 인공위성 발사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석원 항공우주연구원 박사는 "프랑스는 냉전시대 군사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우주를 돈이 되는 최첨단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이끌어내면서 우주경제 신시장을 창출했다"고 평가했다.
◆우주 비즈니스로 성장동력 창출
프랑스는 우주기술 개발에선 미국이나 러시아보다 뒤처졌지만 우주시장 개척에는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유럽 내에서 우주 관련 예산과 산업 규모가 가장 크며 유럽 내 우주 활동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961년 프랑스 정부가 설립한 국립우주개발센터(CNES)는 유럽 우주발사체 개발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 1973년부터 가동한 유럽우주청(ESA)의 '아리안 프로그램(Ariane Program)'은 사실상 프랑스의 CNES가 주도한 것이다. 아리안 프로그램은 유럽의 독자적인 로켓 발사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유럽의 로켓 개발에 필요한 비용의 50% 이상을 프랑스가 부담했다. 프랑스가 개별 국가 차원에서 우주 개발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혼자 힘으론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주산업은 엄청난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한 만큼 유럽 국가들이 주머니와 두뇌를 합쳐야 그나마 승산이 있었다.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유럽 연합군들의 작전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지난 1979년 아리안1호가 첫 발사에 성공했고, 이후 아리안5호까지 진화했다. 아리안5호의 발사 성공률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인 97%를 자랑한다.
◆정부 관료들까지 로켓 세일즈
프랑스의 우주개발산업은 EADS 아스트리움, 아리안스페이스 등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형태를 보인다. 우주 개발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프랑스는 미국이 국력 유지 차원에서 우주기술 수출을 꺼리면서 생긴 공백을 메웠다. 통신위성이나 기상관측위성 등 상업적인 용도에서 우주를 활용하고 싶어하는 수요는 늘어났지만, 로켓 발사 대행을 비롯한 서비스 공급은 모자랐다. 프랑스는 그 시장을 파고들었다. 위성 한 대를 쏘아 올리는 비용은 위성 무게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형 로켓의 경우엔 1억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미국이 상업 발사시장 진입에 주춤한 사이 프랑스는 고품질의 위성발사 시스템을 개발해내면서 우주 고객들을 빨아들였다. 우주 영업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프랑스 관료들까지 나라 밖에서는 아리안 로켓을 홍보하는 우주 세일즈맨으로 활약할 정도다. 아스트리움에서 해외수출사업개발을 담당하는 기 리무쟁(Limouzin)씨는 "중동과 동남아·아프리카 등 우주 후발국을 상대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면서 한국과 같은 중진국과의 협력을 통해 우주 개발비용을 줄여가는 양동작전이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산업 시장은 지각변동 중
프랑스의 항공우주산업 종사 인력은 현재 약 12만명으로 미국(65만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다. 우주산업 예산도 미국의 5% 수준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우주산업 수출에 있어서는 독보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로켓 기술을 갖지 못한 국가의 위성을 대신 발사해 준다든지 혹은 우주 관련 원천기술은 전혀 없지만 선진국 수준의 사회 인프라를 깔고 싶어하는 신흥국들의 위성을 대신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미 열강들이 지배해온 우주산업 시장도 최근 중국과 인도·일본 등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인도 등은 저가형 로켓으로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양군호 항공우주연구원 박사는 "우주산업 기술은 다른 기술을 선도하는 효과가 크다"며 "우주산업은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인 한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열강들이 우주산업에 앞다퉈 뛰어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