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꼬박 20시간 걸려서 도착한 동아프리카 중심국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가는 길은 비교적 잘 닦여 있었다. 멀리 기린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이러한 여유로움도 잠시. 나이로비 시내에 들어서자 좁은 길에 정체된 중고차들이 뿜어대는 매연 탓에 목이 따가웠다. 차량이 신호에 걸리면 어김없이 현지인 수십명이 도로로 뛰어들어 과일과 생필품을 팔았다. 소형버스(matatu)는 정류장도 없이 사람들을 콩나물처럼 싣고 다녔다. 호텔과 쇼핑센터 등 주요 시설물 입구에서는 소총을 가진 경비원들이 폭발물 탐지기로 차량을 검사했다. '혼돈과 불안….' 실업률이 40%에 이른다는 가난한 나라 케냐의 첫인상이었다.

케냐에서는 2007년 말 대통령 부정선거 논란 때문에 유혈충돌이 일어나면서 150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사업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의문을 무색게 하듯,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특유의 근면함과 추진력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케냐 최대 시스템(맞춤형) 가구 업체인 환성(Hwan Sung)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04년 공장을 설립한 이래 매년 두배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600만달러(약 70억원). 1000달러 후반인 1인당 국민소득과 낮은 인건비를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나이로비 외곽의 몸바사 로드(Mombasa road)에 위치한 환성 가구 공장. 수십명의 케냐 현지인들이 한국인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목재를 자르고 책상을 조립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환성의 장재영(52) 사장이 작업장에 나타나자 이들은 잠시 일을 멈추고 특유의 낙천적인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현지 직원인 무투쿠 음보카씨는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고, 급여 수준도 높기 때문에 환성에 근무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1만9800㎡(6000평)의 부지에 건립된 이 공장에는 일감이 끊이질 않는다. 환성이 최근 발주되는 주요 아파트 빌트인(built-in·붙박이) 가구 사업을 거의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한국인 특유의 속도'를 비결로 꼽았다. "아파트 부엌을 하나 꾸미는 데 우리는 한 팀(3명)이 하루면 되지만, 경쟁사는 적어도 일주일이 걸립니다."

물론 아프리카인들에게 이런 업무속도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장 사장은 개개인의 실적을 관리하는 별도의 팀을 만들고 철저하게 성과 위주로 직원들을 다뤘다.

"케냐의 대졸 초임이 월 1만5000실링(약 23만원) 정도인데, 환성에서는 성과에 따라 월 10만실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히 최대한 일을 많이 하려고 하죠."

케냐 최대 시스템 가구 업체인 환성의 장재영 사장(가운데 흰색 와이셔츠)과 현지 직원들이 나이로비 외곽 몸바사 로드에 있는 공장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장 사장은 또 제품 공급 협상 시 상대방 종족을 파악해서 사이가 좋은 종족의 직원을 보내는 등 현지인의 특성을 고려한 경영으로 짧은 시간에 환성을 케냐 대표 가구 업체로 키웠다.

"본사가 있는 우간다에 가면 이런 규모의 공장이 4개나 더 있습니다."

장재영 사장의 말처럼 환성은 우간다에서 시작해 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장한 한국 대표 기업이다. 한국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성환(57) 회장이 1980년대 후반 우간다로 건너가 빅토리아 호수의 나일퍼치(민물농어)를 잡아서 유럽으로 가공·수출한 것이 환성의 모태다. 이후 환성은 상자·가구·알루미늄 등으로 사업을 확장, 우간다·케냐·수단 등지에서 1200여명이 근무하는 중견 기업이 됐다. 김 회장은 우간다 본사에서 그룹 경영을 총괄하면서, 현지 한국 명예 영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재영 사장은 2001년 한국에서 우연히 환성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보고 감동했다. 조선일보에 실린 환성 채용광고를 보자마자 김 회장과 면접을 보고 2주일 만에 회사에 합류했다.

10개월 동안 현지 생활을 맛본 장 사장은 아프리카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결심, 아내와 두 딸을 불러들였다. 큰딸은 케냐에서 외국인 학교를 나와 올해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

"처음에는 쉽지 않더군요. 인·허가 체계가 허술해 정식 절차를 밟아 건물을 세웠다가 뒤늦게 문제가 생겨 거액의 벌금을 내기도 했고, 복잡한 노동법 때문에 직원 관리도 힘들었습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치안이다. 크고 작은 강도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국경을 맞댄 소말리아의 해적들로부터 총기류가 대거 유입되고 있다.

그래서 환성이 아프리카에서 사업하면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현지인과의 융화'다. 오랜 식민지 생활로 가난과 질병에 고통받아온 현지인들에게 최대한 베풀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만 사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성은 2007년 100만유로(약 16억원)를 들여서 우간다에 '환성의료자선원'을 설립하고 매년 10여명의 심장병 환자를 수술해주고 있다. 지난해는 케냐에서도 8명의 심장병 환자가 처음으로 혜택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매력은 적은 돈으로도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입니다. 치안이나 정치 불안 문제요?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고생하는 건 당연하죠. 오히려 기본 여건이 좋으면 세계 경쟁자들이 모두 들어오지 않을까요?" 장 사장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느긋한 성격도 처음에는 조금 답답했다. 하지만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만 잘한다면 함께 일하기 좋은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