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말 휴대전화 부품 업체 파트론의 김종구 사장은 한 달간 실적을 보고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창업 이후 처음으로 월별 기준 1억원대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벤처캐피탈을 통해 40억원의 투자를 받자마자 생긴 적자여서 죽을 맛이었다.

"회사 미래가 밝다고 선전하면서 투자를 받았는데, 바로 그다음 달 적자로 돌아섰으니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었죠."

그렇게 시작된 적자가 10개월을 이어갔다. '다음 달엔 만회하겠지' '다음 달엔 흑자 전환을 하고야 말겠다'는 수많은 기대와 다짐이 번번이 좌절되는 지옥 같은 10개월이었다. 더구나 회사 매출의 85%를 차지하던 주력 제품인 '유전체(誘電體) 필터' 매출 감소 때문에 생긴 적자여서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유전체 필터는 여러 주파수 중 필요한 주파수만 통과시키는 정밀장치로, 휴대전화의 핵심 부품이다.

적자가 누적되자 파트론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 직원들의 발길도 잦았다. 수시로 방문해서 실적을 체크할 때마다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휴대전화 부품 업체 파트론의 김종구 사장이 경기도 화성 본사 회의실에서 제품 개발 전략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김 사장이 당시 승부를 걸었던 것은 휴대전화용 내장형 안테나 신제품을 개발하는 연구·개발(R&D)이었다.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도 2004년 전체 매출의 14%를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다. 김 사장은 "당시 휴대전화 안테나가 내장형으로 바뀌는 추세여서 우리가 갖고 있던 세라믹 기술을 활용해 크기가 작으면서도 주파수를 잘 잡는 안테나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2005년 1월 신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연구·개발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지옥에서 건져내는 동아줄 역할을 했다. 2005년 4월 월별 실적이 드디어 흑자로 돌아섰다.

김 사장은 삼성전기에 다니다 2003년 1월 유전체 필터 사업을 갖고 나와서 파트론을 세웠다. 삼성전기는 "수요가 길어야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아 시장성이 없다"며 포기하려던 사업이었다. 유전체 필터는 크기가 1㎝ 정도였으나, 휴대전화가 작아지면서 그것을 대체하는 2~3㎜짜리 초소형 신제품이 쏟아졌다. 그 때문에 삼성전기의 유전체 필터 매출도 2001년 300억원에서 2002년 250억원으로 감소하며 갈수록 실적이 악화됐다.

할 일을 잃게 된 유전체 필터 사업 부문 후배들이 김 사장을 찾아와 "살려달라"며 매달렸고, 김 사장도 "10년 가까이해온 분야라 자신 있다"며 퇴직금과 처남의 적금까지 담보로 맡기면서 빌린 돈으로 파트론을 세웠다.

창업 1년 만에 닥쳤던 '지옥 같은 10개월'은 파트론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극한 상황에서 단련된 연구·개발 능력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장 수요가 사라져가던 휴대전화용 유전체 필터 대신 통신사의 기지국·중계기용 유전체 필터를 개발했던 것이다. 기지국·중계기용은 크기에 구애를 받지 않아 성능만 좋으면 됐다.

대기업이 가능성이 없다고 버렸던 품목이었지만 파트론은 그것을 성장 동력으로 승화시켰다. 현재는 세계 유전체 필터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고 있다. 회사 성장률도 눈부시다. 2005년 9.8%였던 영업이익률은 2006년부터 3년 동안 평균 17%로 뛰어올랐다. 2005년 267억원이었던 매출은 이후 해마다 60%대로 가파르게 증가해 지난해엔 1174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1900억~1950억원을 내다본다.

김 사장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폰(PC 기능을 탑재한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광(光)마우스, 자석을 활용해 나침반처럼 방향을 탐지할 수 있는 지자기(지구 자기장) 센서를 차세대 병기(兵器)로 삼고 있다. "현재 해외 수출 비중이 15% 정도입니다. 기술력은 있지만 휴대전화 부품 특성상 여러 업체에 동시에 납품하기는 힘듭니다. 따라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뚫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