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은 2006년 달에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기지를 2020년 착공하겠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기지 건설에는 콘크리트가 필수다. 그렇다고 지구에서 자갈과 시멘트, 물을 다 싣고 갈 수는 없다. 최근 국내에서 해답이 나왔다. 바로 달에서 채취한 흙으로 만드는 '물 없는 콘크리트'다. NASA에서도 관련 연구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

아폴로 17호의 우주인이 달에서 토양을 채취하고 있다. 2020년 달 기지 건설이 본격화되면 달에서 직접 채취한 토양에 물 대신 플라스틱 이나 에폭시 수지 등을 섞어 기지 건설용 콘크리트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달 복제토로 물 없는 콘크리트 제작

우주선이 1㎏의 화물을 싣고 가는 데 5만~10만달러가 들어간다. 달 기지 건설에 필요한 콘크리트 재료를 싣고 갈 수 없는 것도 이런 엄청난 운송비 때문이다.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이태식 교수 연구팀은 최근 달의 토양과 성분이 비슷한 경주 지방의 흙을 이용해 물 없이 콘크리트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7일 한양대에서 열린 '우주 탐사와 개발' 국제콘퍼런스에서 관련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달에서 채취한 흙으로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콘크리트는 자갈과 모래, 시멘트, 물을 섞어서 만든다. 시멘트와 물은 자갈과 모래를 서로 달라붙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달의 흙으로 자갈과 모래를 대신하기로 했다. 제주도, 경주-포항, 김포 하천 지역은 과거 화산대 지역으로 국내에서 달 토양과 유사한 화산 쇄설암이 분포된 지역이다. 연구진은 지질분석을 통해 경주-포항 지역이 달 토양과 가장 비슷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곳에서 채취한 흙을 체로 걸러 달 토양과 입자 크기가 유사한 달 복제토(KOHLS-1)를 만들었다. 미국·일본·중국·캐나다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다.

한양대 이태식(오른쪽), 베르놀드(Bernold) 교수가 달 복제토로 만든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고 있다. 베르놀드 교수는 미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우주건설을 연구하다 2007년 한양대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물이다. 최근 달에 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양이 적은 데다 물을 뽑아내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콘크리트 반죽을 만들려고 금값보다 비싼 물을 쓸 수는 없다. 한양대 연구진은 플라스틱 섬유를 녹여 달 복제토와 섞었다. 이태식 교수는 "지구에서 콘크리트를 굳히는 데 1주일에서 28일이 걸리지만 이번에 개발한 달 콘크리트는 단 10분이면 완전히 굳는다"며 "강도 면에서 NASA의 것에 비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조금의 연구만 더 진행하면 실용화가 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물 없는 콘크리트 개발이 한창이다. 지난해 미국 앨라배마대의 후삼 투탄지(Toutanji) 교수는 달의 흙에서 추출한 황을 접착제로 쓰는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100g의 달 복제토와 황 35g을 섞고 섭씨 130~145도로 가열해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이 콘크리트는 지구에서 느끼는 기압의 170배에 해당하는 17메가파스칼의 압력도 견뎌냈다. NASA 고다르 우주비행센터의 피터 첸(Chen) 박사는 황 대신 에폭시 수지를 접착제로 쓴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달 복제토 수출도 추진

한양대 연구진은 2단계 연구로 달의 토양과 화학적 성질도 동일한 명실상부한 달 복제토를 만들 계획이다. 현재 개발한 달 복제토에는 달에 있는 산화철(FeO)이 없다. 달은 진공상태여서 흙의 산화가 이뤄지지 않아 지구에 있는 삼산화철(Fe₂O₃) 대신 산화철이 있다. 또 달은 대기층이 없어 태양열을 그대로 받는다. 즉 흙이 구워져 있는 상태다. 연구진은 달에만 있는 성분을 추가하고 오븐에서 섭씨 2000~1만도로 구워 화학적 성질도 동일한 달 복제토를 개발할 예정이다.

물리적 성질뿐 아니라 화학적 성질까지 달의 흙과 똑같아지면 가격도 급상승한다. NASA는 달 탐사용 로봇 시험과 달 기지 건설 연구를 위해 달 복제토를 구매하고 있다. 물리적 성질만 같은 경우 1t당 가격이 1만600달러다. 하지만 화학적 성질까지 같으면 값이 6만달러로 뛴다. 이 교수는 "NASA는 2012년에 달 복제토 50만t의 입찰을 할 예정"이라며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우리가 만든 복제토를 NASA에 납품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저 유류저장기지 건설에도 활용 가능

물 없는 콘크리트는 달 기지 건설에만 쓰는 것은 아니다. 달의 우주망원경과 해저 석유비축기지 건설에도 쓰일 수 있다. NASA의 피터 첸 박사는 지난 6월 미국천문학회에서 달 복제토 콘크리트로 만든 지름 30㎝짜리 우주망원경용 반사경을 공개했다.

첸 박사는 달 복제토(JSC-1A)에 에폭시 수지와 소량의 탄소나노튜브를 섞어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아직 굳지 않은 콘크리트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반사경 밑판을 만들고서 그 위에 알루미늄 박막을 입히면 반사경이 만들어진다. 첸 박사는 "달에 지름 2.4m의 허블망원경과 같은 망원경을 지을 때 지구에서 에폭시 수지 60㎏, 탄소나노튜브 1.3㎏, 알루미늄 1g만 가져가면 된다"고 밝혔다. 콘크리트 주재료인 흙은 달에서 600㎏을 채취하면 된다는 것.

지구에서도 쓰임새가 많다. 이 교수는 "태양열과 각종 방사선이 쏟아지는 달에 기지를 짓는 것은 원자력발전소 내부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이라며 "이런 극한 공학(extreme engineering)은 풍랑과 수압이 심한 바다 아래서 석유를 저장할 저장고를 만들거나 해저호텔을 만드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물 없는 콘크리트는 굳는 시간이 워낙 짧아 강도만 보강되면 지구에서 건설 공기를 크게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