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중에는 창조적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상황에 의존한 경우가 적지 않다. 칸트는 자기 방 창문에서 보이는 탑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영감을 얻곤 했다. 프로이트는 백 개비도 넘는 담배를 피우며 기분 전환을 시도했다. 발자크나 플로베르처럼 술에 의존한 소설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창의성이 개인의 타고난 재능이긴 하지만 특이한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0여 년 전부터 사회심리학자들은 보통 사람들도 상황을 활용하면 창의적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사람을 때때로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의 하나로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가 손꼽힌다. 심리적 거리는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에 의해 설명된다. 해석 수준 이론(CLT)은 심리적 거리가 어떻게 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한 마디로 객관적인 상황 자체보다 그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1998년 미국 뉴욕대 야코브 트롭과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니라 리버만은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처음으로 CLT를 발표했다. 사람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시간적 거리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는 성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들은 시간적 거리는 물론 공간적 거리나 사회적 거리에 의해서도 동일한 사건이 달리 해석된다는 이론을 완성했다. 2007년 '소비자 심리학 저널(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에 발표된 CLT에 따르면 사람들은 동일한 사물에 대해 심리적으로 시간·공간·사회적 거리가 가깝다고 여기면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반면에 그렇지 않다고 느끼면 추상적으로 해석하는 성향이 있다. 요컨대 시간·공간·사회적으로 '심리적 거리'가 먼 사물일수록 더욱 추상적으로 해석된다.

2009년 미국 인디애나대 심리학자 라일 지아는 '실험사회심리학 저널(JESP)' 온라인판 6월 9일자에 공간에서 심리적 거리를 증대시키면 창의성이 향상된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사물을 멀찌감치 두고 생각하면 좀더 창의적으로 되는 까닭은 사물을 좀더 추상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가령 옥수수를 가까운 거리에서 구체적으로 보면 낱알을 생각하며 식품으로밖에 여기지 않지만 먼 거리에서 추상적으로 보면 땔감을 연상하게 된다. 이를테면 옥수수가 생물연료인 에탄올의 원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서로 연관이 없는 개념인 곡물과 에너지를 동시에 연상하는 것은 그만큼 창의적 사고를 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 연구결과에 대해 CLT 제안자인 니라 리버만은 일상생활에서 응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온라인판 7월 21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리버만은 심리적 거리를 응용하여 창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열거했다.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여의치 않으면 그곳에 가는 것을 꿈꾼다. 먼 훗날을 상상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리버만은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봉착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문제와 거리를 두고 씨름하다 보면 언젠가 답이 나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