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임무는 과학기술위성 2호를 지구 상공 300㎞ 궤도에 최종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이다. 상단(2단) 고체연료 로켓이 이 임무를 맡았다. 국내 연구자와 기업들이 5년 개발 끝에 이룬 성과다.

다이어트만이 살 길

나로호는 러시아에서 개발된 하단(1단) 액체연료 로켓과 상단 고체연료 로켓으로 구성된다. 상단 로켓에는 과학기술위성 2호가 실려 있고 그 주위를 덮개인 페어링이 싸고 있다. 1단 로켓이 발사 229초 뒤 196㎞ 상공에서 작동을 멈추면 곧이어 상단 로켓이 점화된다.

상단 로켓은 HTPB라는 플라스틱 성분과 알루미늄 가루, 과산화암모늄을 섞어 만든 고체 연료를 쓴다. 이 중 알루미늄이 불타는 연료이고 과산화암모늄은 산소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연료를 태우는 산화제 역할을 한다.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연구원들이 국내에서 제작한 나로호 상단 로켓을 점검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과 기업들이 5년간 연구 끝에 독자 개발했다.


2003년 3월 24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상단 로켓 개발을 담당한 팀장급 연구원들이 한 회의실에 모였다. 각자 맡고 있는 개발팀의 연구성과를 알리면서 다른 팀과 업무협의를 하기 위한 자리였다. 가장 민감한 문제는 무게. 상단 로켓의 속도를 높이려면 몸무게를 줄여야 했다. 각 팀장은 "우리는 더는 줄일 게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로켓 무게 관리를 맡은 정의승 체계종합팀장은 "이렇게 무게를 못 줄이면 발사체는 실패"라고 협박하며 팀장들을 압박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이미 고체연료를 쓰는 과학로켓 I, II를 개발한 바 있다. 하지만 나로호 상단 로켓은 완전히 다른 형태다. 예전 로켓은 금속으로 만들었지만 나로호 상단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이 탄소섬유와 같은 복합소재로 만들었다. 그래도 무게가 줄지 않자 버릴 부분을 찾았다. 박정주 발사체체계사업단장은 "전자부품이 들어간 상자에서도 필요 없는 부분은 다 깎아냈을 정도"라고 말했다.

팀장 회의가 거듭될 때마다 로켓 설계도에서 무게가 계속 줄었다. 박 단장은 "200번 넘게 회의를 한 끝에 마침내 원래 목표대로 설계 무게를 달성했을 때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처럼 다들 환히 웃으며 손뼉을 쳤다"고 말했다.


폭발 사고 딛고 일어서

나로호 상단 로켓은 2008년 8월 완성됐다. 추진기관 제작은 한화가, 엔진은 비츠로테크, 페어링은 두원중공업, 조립은 대한항공, 탄소복합체는 한국화이바가 담당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드는 우주발사체용 로켓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사고는 2006년 3월 상단 로켓엔진 2호기 지상시험에서 일어났다. 정상적인 연소시간은 약 60초인데 연소시작 후 약 30초가 지나서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작은 연소시험 실패는 가끔 있었으나 이런 대형 실패는 처음이었다. 시험설비도 모두 타버려 복구에만 5개월이 걸렸다. 연구원들은 "당시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자다가도 얼핏 의식이 들면 폭발 장면이 떠올라 소스라쳐 일어난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체엔진은 한꺼번에 연료를 태워 로켓을 밀어올리는 추진력은 쉽게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우주발사체에 쓰려면 추진력뿐 아니라 연소시간도 길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연소관 중간 중간에 특이한 모양으로 공간을 둔다. 그렇지 않고 연료를 꽉 채운 상태에서 불을 붙이면 한꺼번에 다 타버리고 만다. 박정주 단장은 "연소시간이 길어지면 연소관이 손상될 수 있어 연료 등 추진제와 연소관 사이에는 내열재를 넣는다"며 "당시 사고는 내열재에 작은 구멍이 나 엄청난 압력과 온도의 가스가 연소관을 뚫어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내열재를 보강하는 한편 불꽃을 내뿜는 노즐 방향을 조절해 로켓 방향을 바꾸는 기술도 개발했다. 마침내 지상시험이 그해 8월 31일 성공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신혼여행도 잊고 연구에 매달려

연구원들은 모두 지난 5년간 개인 생활을 잊었다. 상단 연소시험설비를 담당했던 김상헌 연구원은 2007년 결혼식 전날까지 연소설비 검증시험에 매달렸다. 다행히 시험이 무사히 끝나 다음 날 전남 고흥에서 결혼식 장소인 대구로 달려가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급하게 이동하느라 하객으로 참석한 동료 중에는 작업복 차림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다음 시험을 위해 신혼여행도 가지 못하고 다시 연구현장에 복귀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외조부 상을 당해 서울로 가던 중, 인천공항에 러시아에서 보낸 부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발길을 인천으로 돌리기도 했다. 강풍 속에 목숨을 걸고 경비행기를 타고 나로호 추적 모의시험을 한 연구원들도 있었다.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은 "발사가 성공하면 모든 공을 숨은 곳에서 묵묵히 일을 해준 연구원들에게 돌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