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김치를 만든 것도 벌써 15년째네요. 이젠 다른 식당 가서 김치를 먹더라도 주인이 어떤 재료를 썼고, 얼마나 숙성시켰는지 척척 맞혀냅니다."
SK그룹 계열 워커힐호텔 내 김치연구소를 책임지는 이선희(40) 조리장은 "15년 전 한식을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어느덧 최고참이 됐다"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는 호텔 내에서는 '김치 박사'로 불린다. 이 조리장은 1990년 경희호텔대를 졸업하고 워커힐호텔에 입사해 처음엔 양식당에서 일했지만, 1995년 한식에 관심을 갖고 김치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현재 호텔에서 '수펙스(SUPEX)' 김치 제조를 책임지고 있다. 수펙스는 최고를 지향한다는 개념을 담은 SK그룹의 경영 슬로건. 워커힐호텔은 "김치도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맛이 나야 한다"는 고 최종현 그룹 회장의 지시에 따라 1989년부터 김치연구소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고 이 후 생산하는 김치에 '수펙스 김치'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수펙스 김치'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같은 종류의 김치라면 어느 계절에 만들더라도 동일한 맛이 나도록 최적의 제조법을 찾아 제조자들이 공유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조리장은 이런 수펙스 김치의 전통을 잇는 동시에 그만의 노력으로 호텔 안팎에서 크고 작은 성과를 냈다. 호텔 내 식당 공급용 위주였던 워커힐호텔 김치를 외부에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한 것도 2007년 그가 조리장으로 취임한 이후의 변화이다. 지금도 이 조리장이 15명의 직원을 이끌고 생산하는 하루 약 1t의 김치 가운데 20~30%가 현대백화점 등 외부를 통해 판매된다. 한국을 찾은 각국 유명 외교사절을 위한 만찬은 물론, 해외 한국 음식페스티벌에도 수시로 참가해 명성을 떨쳤다.
이 조리장은 "값비싼 호텔 김치라면 그에 걸맞게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를 위해 정성·맛·균일한 품질, 이 세 가지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가령 김치에 쓰이는 소금이나 새우젓 하나라도 좋은 것을 구하기 위해 서해안이나 전남 신안 일대를 이 잡듯 뒤졌다. 또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대량 생산에 필요한 주방 시설을 새로 갖추고, 포기김치·갓김치 등 호텔에서 새로 만들기 시작한 김치들에 대한 매뉴얼화 작업도 진행했다. 그의 김치 주방 업그레이드 요청에 대해 호텔 측도 흔쾌히 10억원을 투자했다.
이 조리장은 "김치를 글로벌 식품으로 만드는 게 꿈"이라며 "이를 위해 앞으로 해외 수출을 겨냥한 고품격 김치들을 차례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