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류학과 박순영 교수

인류학에서는 늦은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키가 더 크다는 것이 통설이다.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출생 시기에 따른 키를 조사한 결과 인종과 지역, 북반구와 남반구를 가리지 않고 공통된 현상이라고 한다. 인류학계는 정확한 이유를 규명하진 못했지만 일조량이 발육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북한에서 출생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순영 교수팀은 지난 4일 국제학술지 '인류생물학 연대기'에 발표한 논문에서 "1996~1997년 북한의 6세 미만 아동 약 2000명을 조사한 결과, 가을에 태어난 아이가 봄에 태어난 아이보다 키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의 조사결과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박 교수는 "인류학의 통설이 북한에서 뒤집힌 것은 당시 심각했던 식량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식량난은 같은 해라도 가을보다 봄이 더 심각하다. 가을엔 추수가 있어 그래도 낫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당시 북한에서 가을에 태어난 아이의 영양공급이 봄에 태어난 아이보다 상대적으로 나았다고 볼 수 있다"며 "결국 식량난이 자연적인 아동 발육의 특징마저 뒤흔들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같은 시기 남한이나 일제 침략기 남·북한 아동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모두 봄에 태어난 아이가 가을에 태어난 아이보다 키가 컸다"며 "이를 통해 1990년대 북한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