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3년 후에 위암에 걸릴 확률은 86%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술과 짠 음식을 줄이고 우리가 처방하는 약물치료를 병행한다면 위암의 발병 자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치료부터 한다?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여기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세 명의 과학자들이 모였다. 가천의과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의 김성진 원장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의 박종화 센터장, 삼성SDS 정보기술연구소의 박승안 소장이 주인공. 이들이 추진하는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 사업은 컴퓨터를 활용해 인간의 방대한 유전자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미래에 찾아올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Digital BIZ는 지난 2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국내 바이오인포매틱스 사업을 이끄는 세 명의 과학자들을 만나 IT(정보기술)와 BT(바이오기술)의 만남이 우리 삶에 가져올 혜택과, 바이오인포매틱스가 우리나라의 차세대 수종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들어봤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구글처럼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 정도로 바이오인포매틱스는 중요한 분야"라며 "우리나라가 지금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진 원장(이하 김성진): "지난 2003년 완성된 '인간 게놈(Genome· 유전체) 프로젝트'는 우리 몸의 유전자 정보를 최초로 분석해냈다. 하지만 유전체만 분석하면 특정 질병에 걸릴 위험성을 알아내서 모든 병이 극복될 것이라는 당시 기대와 달리 실제 의학에 적용은 더디게 이뤄졌다. 30억쌍에 이르는 방대한 유전자정보를 활용할 컴퓨팅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오인포매틱스'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생물학자들이 찾아낸 원석(原石)을 보석(寶石)으로 다듬는 것이다."

박승안 소장(이하 박승안):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사람의 유전자구조가 'A''G''T''C'와 같은 4진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0'과 '1'의 2진수로 모든 정보를 표시한다. 즉 컴퓨터의 2진수 정보표현 구조를 조금만 확장하면 4진수로 이루어진 인간의 유전자를 쉽게 표현할 수 있다. IT와 BT의 숙명적인 만남이 아닌가."

박종화 센터장(이하 박종화): "결국 생물학(Biology)은 수많은 데이터가 모여 있는 정보 과학(Information Science)이다.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생물학자들보다 유전자 정보를 분석할 고성능 컴퓨터와 대용량 저장장치가 더 중요한 것이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IT업체들이 의학 분야에 뛰어드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미 구글은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개인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사업에 1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안: "2003년 완성된 게놈프로젝트에서 한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는 데에는 13년 동안 2조7000억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2개월 동안 수억원만 들이면 한명을 분석해낼 수 있다. 앞으로 5년 후에는 어떤 일이 가능할지 아무도 모른다."

김성진: "관건은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다. 미국에서는 의학 발전을 위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쉽지 않다. 혹시라도 유전적인 질병 정보가 유출되면 자신이나 자녀가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식의 불안감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개인정보 유출 방지대책과 유전자 정보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차별 금지법'이 발효됐다."

박종화: "지금 시점에서는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추진하다가 한 번쯤 큰 문제를 일으킬 필요도 있다. 아직 바이오인포매틱스의 부작용에 딴죽을 걸 정도의 인식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요즘 구글이 사람들의 질병 정보를 독점하려 한다며 강력하게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비난 때문에 바이오인포매틱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났다."

김성진: "지난해 내 몸의 유전자 정보를 직접 분석해서 공개한 것도 바이오인포매틱스에 대한 관심을 불러모으기 위해서였다. (김 원장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개인 유전체를 분석하고 이를 공개했다.) 나는 '노인성 황반변성'(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질병)에 걸릴 위험이 일반인보다 8.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의 예상 질병이 알려졌지만 부끄럽지 않다. 분위기를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박승안: "병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현재 미국에서 진행하는 의료 포털 서비스는 환자 개개인의 의료기록을 병원으로부터 받아서 평상시 생활습관과 연결해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걸릴 수도 있는 질병을 알려준다. 기초적인 수준의 예방의학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병원들이 환자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모델이다."

김성진: "진료정보 공유가 중장기적으로는 쓸데없는 처방이나 잘못된 처방을 줄여서 병원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의사들이 인식하면 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퍼듀대학과 공동으로 의사들이 약을 처방할 때 환자의 유전자 특성을 고려해서 부작용을 알려주고 약의 투입량을 결정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의사들의 감으로 이루어졌던 조치가 시스템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박종화: "우리나라는 바이오인포매틱스가 발전할 수 있는 기술적 우위를 갖췄다. 예를 들어 유전체 분석에는 고성능 컴퓨터도 중요하지만 저장장치도 매우 중요한데, 우리에게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있다. 바이오인포메틱스 연구용 시스템의 저장장치가 기존의 느린 HDD(하드디스크)에서 빠른 차세대 SSD(메모리 저장장치)로 넘어가는 가운데, 삼성이 SSD 가격을 훨씬 낮출 수만 있다면 우리의 경쟁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김성진: "몇몇 기업이나 기관이 하는 투자로는 힘들다. 미국에서 알던 중국 과학자가 최근 본국으로 돌아갔다. 난징대학에서 3년 동안 매년 300만달러(약 38억원)를 연구비로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무섭게 투자를 하고 있다."

박승안: "구글은 하버드 의대와 공동으로 10만명의 유전자정보를 해독해서 개인 건강정보와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개별 기업이 그런 식의 대규모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김성진: "정부의 지원이 꼭 금전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국립생물정보센터(NCSI)'와 '바이오뱅크 저팬'에서 모든 유전체 연구 정보를 관리한다. 정부가 통합된 연구체계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이오인포매틱스는 국민의 건강을 챙겨서 국가 전체 경쟁력을 키워줄 산업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

1 박승안 삼성SDS 정보기술연구소장. 2 박종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장. 3 김성진 가천의과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장.

>> 프로필

박승안(51) 소장

미국 페어리디킨슨대학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 회장비서실 정보시스템 부서에서 10년 동안 그룹 전체의 IT시스템 관리업무를 수행했다. 2000년 삼성SDS의 미국 뉴저지 데이터센터를 설립, 2005년부터 삼성SDS 정보기술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종화(42) 센터장

영국 애버딘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컴퓨터공학 부전공)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물정보학 박사학위를 땄다. 케임브리지 MRC 연구소 재직 당시, 생명정보학 연구를 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초 컴퓨터 프로그램 '바이오 펄'을 개발했다.

김성진(55) 원장

일본 쓰쿠바대 응용생화학 박사 출신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 암연구소의 종신 수석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논문만 192편을 발표한 암 성장 억제 단백질 연구 분야의 권위자다. 지난해 세계 다섯 번째로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고 공개했다.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

생물학(Biology)과 정보과학(Informatics)의 합성어. 고성능 컴퓨터로 유전체 정보를 수집, 분석해서 예방의학·맞춤의학과 같은 생명공학 분야에 활용한다. 인간 한 명의 유전체 정보가 30억개 이상의 변수를 갖고, 수십 테라바이트(DVD 영화 수십편 분량)의 용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수퍼컴퓨터와 대용량 저장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