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재테크팀장

"정말 괜찮겠냐고 물어보면 부동산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며 확신을 갖고 막 주워담더라고요."(윤설희 국민은행 PB센터장)

"요즘 강남에선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치솟는다는 '2011년 부동산 대폭등설'이 화제예요."(조재영 우리투자증권 부장)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큰손(개인 자산가)'들이 금고문을 열고 공격적으로 부동산에 베팅하고 있다. 실업자가 늘고 있는 현 경제 상황이나 저출산으로 주택 수요가 줄 것이란 학자들의 전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근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은 한두 명이 움직여서라기보다는 부자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반영된 것이란 지적이 많다. '큰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①인플레이션에 미리 대처

부자고객들을 상대하는 금융회사 PB(프라이빗뱅킹) 팀장들은 "대다수 부자 고객들의 관심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 돈을 많이 뿌렸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먹구름이 찾아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는 23일부터 새로 나오는 5만원짜리 지폐가 상품의 가격을 올리고 소비를 늘려 인플레이션의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래서 현금은 갖고 있을수록 손해이며, 아파트나 건물 같은 부동산에 미리미리 투자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큰손'들의 재테크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의 중심에는 1970~19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자산을 불려온 50~60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과거 땅값과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상황을 몸소 체험했었다.

②특정 지역 부동산에만 올인

그런데 큰손들은 서울 내에서도 특히 강남권 부동산에 집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핵심 지역 부동산이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대다수 PB팀장들은 전한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모든 지역이 아니라 일부 지역의 가격이 급등했다는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학습행동이라는 분석이다.

기자가 김재언 삼성증권 연구위원의 도움을 받아 지난 1986년 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우리나라 전국 주택가격 상승률과 물가 상승률을 비교해 봤다. 그랬더니 해당 기간 물가 상승률(평균치 기준)은 178.5%였다. 하지만 전국의 집값 상승률은 128.7%에 그쳤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낮았다는 이야기다.

다만 지역별로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강남 지역 집값 상승률은 254.5%로, 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강북은 100.2%로 물가상승률에 크게 못 미쳤다. 결국 인플레에 대비해 강남 지역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성공적이겠지만 그 외 지역 집값은 물가상승률조차 쫓아가지 못한 셈이다.

③입맛 맞는 다른 투자처가 없어서

시중에 유동성은 풍부해졌지만 마땅한 투자처가 없고, 정부가 올 들어 세금 등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거 푼 것도 부동산 열기에 한몫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로 유동성 충격을 받지 않은 자산가들, 즉 토지 보상금이나 기업 매각, 주식 처분 등을 통해 현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자산가들이 주로 부동산에 입질하고 있다. 이들은 실탄이 있으니 뭔가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주식 시장은 횡보하고 예금 금리는 연 3%대로 낮다 보니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결국 부동산을 점 찍었다는 것이 PB팀장들의 분석이다. 대규모 토지 보상금을 받은 지주들은 PB센터에 수십억원씩 뭉칫돈을 들고 와선 '목 좋은 곳에 하나 사달라' 혹은 '덤핑 물건 나온 거 없냐'고 채근한다고 한다.

올해 서울과 수도권 택지지구에선 토지보상금이 총 20조원 풀릴 예정이다. 이만수 하나은행 강남WM센터 부장은 "가격이 이미 많이 올라 투자 수익이 별로 높지 않다고 말리는 데도 고객들이 오로지 부동산 투자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아파트를 비롯한 중고주택은 급매물이 많이 소진돼 가격 측면에서 장점이 별로 없어 아직 저평가 상태인 고급빌라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당에 사는 자산가 김모(63)씨는 투자 목적에서 고급 빌라를 매입한 사례에 속한다. 김씨는 한때 40억원을 웃돌았던 전망 좋은 고급빌라를 30억원에 할인받아 매입했다. 그는 "수익형 건물을 사면 월세가 들어와 좋지만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실이나 세입자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④반 토막 펀드 충격에 부동산으로

오래전부터 보유하던 회사 지분을 팔아 '준재벌' 반열에 오른 자산가 황모(70)씨는 올 초부터 100억원대 빌딩을 찾고 있다. 그는 "펀드에 투자했던 돈 50억원이 순식간에 20억원까지 곤두박질쳤다"며 "누가 뭐라 해도 역시 부동산"이라고 말했다. 펀드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은 각 지역의 핵심구역에서 연 7~8% 정도 수익이 나오는 30억~50억원대 상업용 건물을 많이 찾는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아파트는 값이 조금만 오르면 정부가 규제하고 나서기 때문에 규제가 덜한 상업용 건물을 통째로 사고 싶어한다"며 "이런 빌딩들은 한번 값이 오르면 크게 뛴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고 했다. 실제로 초저금리로 임대 수익이 대출 이자를 웃돌자 상업용 건물 몸값은 올 들어 더욱 뛰었다.

"추격 매수는 자제해야"

큰손들의 이 같은 부동산 투자 열기에 일반인들은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파트 저가 매수 타이밍은 늦었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김재언 연구위원은 "강남은 현재 가격 수준이 매우 높아진 데다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집값 상승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은 "금리가 내리면서 집주인들이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생겨 중고주택은 저가에 살 수 있는 시기가 한번 지나갔다"며 "차라리 분양가 상한제 등이 적용되는 신규주택 분양 시장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