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소촌동 ㈜무등 제1공장.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밀려왔다. 6108㎡ 규모의 공장 안에는 20대의 기계들이 떡가래 형태의 말랑말랑한 겔(gel)을 길게 뽑아내고 있었다. 수백m에 이르는 겔은 곧 필름 형태로 납작하게 눌러진 뒤 코일에 동그랗게 감겼다.
이 필름이 '열(熱)수축성튜브'. '열수축성튜브'란 열을 가하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형태로 돌아오는 형상기억 특성을 가진 비닐 조각이다. 돌려 따는 유리병 음료에서 개봉 전에 뚜껑부분을 감싸고 있는 빳빳한 비닐 포장을 연상하면 된다. 이 튜브는 건전지·콘덴서 등 각종 전자부품을 감싸는 포장재로 사용된다. 무등은 세계 열수축성튜브 시장 점유율 31%로, 세계 1위이다.
◆친환경 PET 튜브로 세계 시장 석권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적으로 열수축성튜브의 주된 소재는 폴리비닐(PVC)이었다. 그러나 재활용이 쉽지 않고, 태웠을 때 유해 가스가 발생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유럽·일본 등에서 전자부품에 사용하는 PVC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무등은 이런 시장상황 변화를 감지하고 1996년 친환경 폴리에스테르계(PET) 수지를 이용한 튜브의 개발에 나섰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연구개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일본의 중견업체들이 10년씩 연구개발을 하고도 상용화에 실패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무등은 이 벽을 넘기 위해 코오롱과 손을 잡았다. 대기업인 코오롱이 자재 관련 기술을 제공하고 무등이 압출가공 기술을 통해 완제품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두 회사는 결국 3년 만인 1999년 세계에서 두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PET 튜브의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경쟁 제품에 비해 품질이 30% 정도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절반에 불과했다. 무등은 신제품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2000년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켜온 미쓰비시를 밀어내고 정상에 올랐다. 현재 29개국 265개 업체와 거래하고 있으며, 매출액도 2004년 121억원에서 지난해 161억원으로 증가 추세다.
◆지역 과학도들이 키워낸 '광주의 적자(嫡子)'
이런 무등을 키운 원동력은 '광주의 상아탑'이었다. 무등이 설립된 1968년 당시는 열수축성튜브가 모두 일본에서 수입되던 시절이었다. 무등은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 열수축성튜브를 만들었다. 제품 자체도 일본에 비해 한참 뒤졌다.
1970년대 들어 독자 기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중소기업이 고급 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때 전남대학의 교수들이 연구개발진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 회사 김국웅 회장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평소 기술 조언을 해주던 전남대학 기계·화공 분야 5명의 교수들이 "유망 지역 중소기업인 만큼 작정하고 한번 키워보자"며 의기 투합, 매일같이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한 것. 이들은 급여도 받지 않았고, 야간 작업까지 했다. 마침내 독자 기술을 확보한 무등은 1978년에는 일본으로 제품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김국웅 회장은 "당시 젊은 지역 교수들의 의기(意氣)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아직도 일제 튜브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민과 이익 나누는 향토기업의 모범사례"
김국웅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일은 결국 직원들이 하는 것"이라며 "경영자는 사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 회사의 복지 제도는 중소기업 수준을 뛰어넘는다. 전 직원이 2년에 한 번씩 해외 연수를 다녀오도록 돼 있고, 사택은 물론 사원 휴양시설까지 운영 중이다. 300만~500만원의 출산 장려금과 학자금도 지급한다. 심상민씨(생산3팀)는 "내 젊음을 바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회사"라고 말했다.
광주지방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무등은 회사도 건실하지만 불우이웃돕기와 각종 환경보호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며 "광주가 키운 기업이자 광주에 활발하게 기여하는 향토기업의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