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차가 잘 팔리는 이유는 경제성·실용성 때문이다. 작고 가벼운 소형차는 중·대형차에 비해 연료 소모가 훨씬 적기 때문에 기름값을 아낄 수 있는 것은 물론, 화석 연료를 적게 태워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소형차의 경우는 이런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경차·소형차의 공인연비가 준중형차·중형차와 비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회사 모델의 경우에는 더 무겁고 큰 준중형차의 연비가, 작고 가벼운 소형차의 연비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작은 차를 탄다고 기름을 아낄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은 국내 자동차 모델에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산 경차 연비, 준중형차와 큰 차이 없어
한 완성차 회사의 국내영업본부 관계자는 "국산 소형차가 뛰어난데도 국내 소비자들이 소형차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소형차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국내의 소형차 비중은 전체 차량 판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일본 등에 비해 극히 낮다. 특히 올 1~4월 내수판매 기준으로, 경차와 준중형차를 제외한 현대차 클릭·베르나, 기아차 프라이드, GM대우 젠트라 등 소형차의 판매 비중은 전체의 3.7%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기간 경차는 기아차 모닝과 GM대우 마티즈 등 단 두개 모델로 전체 판매의 13.6%를 차지했지만, 이 경우는 개별소비세와 취득·등록세 면제 등의 특별 혜택 때문인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 판매에서 실제 디자인·연비가 좋기 때문에 소형차를 고르는 비율은 극히 낮다는 얘기다.
실제로 완성차 메이커가 내놓은 공인 연비만 비교해 봐도 소형차를 사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자동 변속기 기준으로 소형차인 현대차 클릭과 기아차 프라이드의 연비는 L당 13km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더 크고 무거운 현대차 아반떼·i30와 기아차 포르테의 연비는 L당 15.2km다.
L당 13km에 불과한 국산 소형차의 연비는 중형세단인 현대차 쏘나타나 기아차 로체의 11.5km와 비교해도 겨우 휘발유 1L당 1.5km를 더 가는 수준밖에 안 된다. 따라서 소형차를 탄다고 해도 연료소비를 줄이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오히려 준중형차를 타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또 자동변속기 기준으로 경차인 기아차 모닝이나 GM대우 마티즈의 공인연비는 L당 16.6km. 현대차 아반떼보다 휘발유 1L당 겨우 1.4Km를 더 달릴 수 있는 정도다.
◆일본 소형차 연비, 동급 한국차보다 30~40% 뛰어나
일본의 경우 경차만 1년에 200만대가량 팔리지만, 이외의 차량도 소형차 판매가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의 경우 경차를 제외하고도 소형차가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작년 경차를 제외한 차량 가운데 판매 10위권 내의 차종을 살펴보면, 한국 기준으로 소형차에 해당하는 차가 1위(혼다 피트)를 포함해 5개 차종에 달했다.
일본도 경차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금 혜택을 주고 있지만, 일반 소형차의 판매가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경제성·편의성이 높기 때문이다. 작지만 디자인이 뛰어나고 수납공간이나 실내 편의장비가 좋은데다 연비가 동급 한국차에 비해 좋은 편이다. 도요타 iQ는 기아차 모닝 정도의 덩치에 해당하지만,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iQ의 연비는 L당 21km에 달한다. 모닝의 연비보다 30% 가까이 좋은 셈이다. 또 기아차 프라이드 정도 크기인 혼다의 소형차 피트는 L당 18.8km에 달하는데, 프라이드의 연비보다 40% 이상 좋은 수치다.
국내의 한 일본 자동차회사 고위 임원은 "한국의 소형차들이 일본에 비해 정말 경쟁력이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소형차 개발을 게을리하면 일본 소형차들이 현지 조립이나 제3국 생산차 수입 등의 형태로 한국시장을 공략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 큰 차 팔려고 소형차 성능개선에 관심 없어
국내 소형차 비중은 3.7%에 불과한 반면, 준중형차(아반떼·i30·포르테·라세티·SM3)의 비중은 24.8%에 달한다. 또 자동차 시장의 60%는 여전히 무겁고 덩치 큰 SUV와 중형·대형세단이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형차 판매가 극도로 부진한 이유에 대해 "팔아봐야 이윤이 거의 남지 않기 때문에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준중형차·중형차의 경우 변속기·엔진의 효율을 개선하고 차체를 가볍게 만들어 연비를 좋게 하는 데 개발력을 투입한 반면, 소형차는 방치했다는 것. 소비자들이 고를 수 있는 소형차가 고작 3가지밖에 없고, 이 또한 오래된 모델뿐이라는 것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한 임원급 엔지니어는 "유럽·일본의 경우 소형차를 더 고급스럽게 만들고 엔진과 변속기 효율을 높이는 데 엄청난 기술력을 투입하고 있다"면서 "국내 업체들도 눈높이가 올라간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소형차를 개발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