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낮, 주말인데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중관춘(中關村)으로 향하는 베이징(北京) 10호선 지하철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대규모 전자상가가 밀집돼 있는 중관촌다제(大街) 주변에서는 노트북이나 평판 모니터, 디지털카메라 포장 박스를 들고 가는 젊은이들로 넘쳐 나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국 경제도 침체의 늪에 빠져 있지만, IT(정보기술) 시장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모습이다.

이달 들어 중국이동통신 등이 3G(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본격화하면서 3G 모바일 인터넷 카드를 내장한 넷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5월 1일 노동절 휴가를 앞두고는 디지털 카메라를 비롯한 디지털 제품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하이룽(海龍), 딩하오(鼎好) 등 주요 전자상가에서 넷북은 대당 2500~4000위안(약 50만~80만원)의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삼성전자, 롄샹(聯想), 델, 휴렛팩커드 등 주요 PC 메이커들도 3000~4000위안대 제품을 내놓고 치열한 판촉전을 벌이고 있었다. 매장에서 만난 회사원 왕위밍(王玉明·26)씨는 "모바일 인터넷 카드가 내장된 넷북은 가격도 저렴하고 어디서든 쉽게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구입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 거리에서 IT 기기를 든 젊은이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넷북이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산자이(山寨)'로 불리는 짝퉁 넷북도 등장했다. 짝퉁 넷북의 가격은 대당 1500위안(약 30만원) 정도로 브랜드 제품 가격의 절반 이하였다. 딩하오 삼성전자 대리점의 천광진(陳廣金) 부장은 "작년 상반기는 대당 8000~1만위안짜리 고급 노트북이 시장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4000~5000위안대 값싼 노트북 수요가 많다"며 "넷북 수요가 30% 이상 늘어나며 성장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관춘도 작년 말과 올 1월에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극도의 침체기를 겪었다. 최대 상가인 하이룽의 경우, 전체 680개 점포 중 입주 점포가 420개로 줄었다. 아직도 고가(高價) TV와 대형 LCD 모니터 등 고급 제품 수요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넷북과 3G 휴대폰 출시 등 호재가 이어지면서 지금은 입주점포가 440~450개 정도로 다시 늘고 있다고 상가관계자는 전했다.

하이룽 6층에 있는 디지털카메라 판매점 '캉카이자예(康凱佳業)'는 20여명의 상담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궈싱후(郭興虎) 상품부장은 "작년 연말과 올 연초 두어달 동안 어려웠지만 지금은 5·1 노동절 연휴를 앞두고 수요가 완전히 회복됐다"며 "중관춘의 금융위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했다.

전자상가뿐만 아니라 전자상가를 둘러싸고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2만여개의 중관춘 IT기업들도 기회를 맞고 있었다.

3G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관련 주변기기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통신업체 등이 활기를 띠고 있고, 네티즌 수 급증으로 써우후(搜狐)·신랑(新浪)·바이두(百度) 등 중관춘 내 인터넷포털업체들도 매출과 순이익이 크게 늘고 있었다. 롄샹 등 PC업체들은 아직 고전 중이지만 올 하반기에 '윈도즈 7'이 출시되면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상가 밀집지대에서 북쪽으로 10㎞ 정도 떨어져 있는 중관춘소프트웨어파크. 미국오라클IBM, 인도타타(TATA)와이프로(WIPRO), 한국의 SK C&C 등 중국 국내외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170여개가 모여 있는 이곳에는 요즘 미국·유럽·일본업체의 개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불황을 맞아 원가를 줄이기 위해 비교적 개발비가 싼 중관춘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하고 있는 것이다.

중관춘소프트웨어파크측은 이미 1기 139만㎡의 분양을 끝내고, 1기 서쪽 편에 143만㎡ 규모의 2기 공사에 착공하는 등 확장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중국 국내외 업체의 입주 수요와 확장 수요가 적잖기 때문이다.

이곳에 입주해 있는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업체 아이소프트스톤(iSoftStone)은 올 들어 미국과 유럽 쪽 주문량이 30~50%씩 증가했다고 밝혔다. 엔고 속에 일본업체의 개발 의뢰도 10~20% 정도 증가했다.

이 회사의 한국영업담당 주승우 이사는 "중관춘은 칭화대, 베이징대와 인접해 있어 고급 인력을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금융위기로 한국 쪽의 개발 의뢰는 줄었지만 선진국 쪽 개발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