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스터 요다(Yoda)'. 그는 어둠의 세력에 맞서는 제다이 전사들을 길러낸 스승이자, 제다이들이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마다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다.
올해 구순(九旬)을 맞은 피터 번스타인(Peter L. Bernstein)은 '월가(街)의 요다'로 꼽힌다. 그는 현존하는 어떤 투자 구루(guru)보다 풍부한 경험과 통찰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10대 시절 대공황을 경험했고, 하버드대에서는 존 F. 케네디(전 미국 대통령)와 함께 공부하며 우등 졸업했다. 2차 세계대전에 정보 장교로 참전했고, FRB(미 연준) 연구원을 거쳐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강의도 했다.
32살이던 1951년 월가에 첫발을 디뎠던 그는 당시 뉴욕 증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하루 총 거래량이 100만주가 안 됐어요. 다우지수는 250을 맴돌았죠. 증시는 돈을 벌기에도, 가서 일하기에도 힘든 곳이었죠."
아버지가 만든 투자회사를 물려받아 수십억달러를 직접 굴리기도 했던 그는 1974년 '저널 오브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를 창간, 기관투자가들에게 과학적인 투자 기법을 전수하며 제다이보다는 요다의 길을 걷는다. 그는 해박한 경제사 지식을 바탕으로 리스크(risk)나 금(金)의 역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을 10여권이나 썼다.
이 중 리스크의 역사를 집대성한 책 '리스크(원제:Against the Gods·1996)'는 그 해 가장 혁신적이고 통찰력이 뛰어난 경영 도서로 선정되고, 에드윈부즈상·아서켈프상 등 주요 출판상을 휩쓸며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PIMCO)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CEO는 이 책을 "성공한 사업가라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적극 추천했고, 노장 경제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신(神)에 대한 도전을 이끌어 냈다"고 극찬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투자컨설팅 회사(Peter L. Bernstein,Inc.)를 운영하면서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Weekly Biz는 이 '월가의 요다'를 지난 10일 약 1시간 동안의 전화와 13, 14일 두 차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뉴욕에 있는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한국 최고 언론과 인터뷰하게 돼 영광"이라고 첫 인사를 건넸다.
―현대 세계 역사를 보면 여러 차례 금융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금융 위기는 되풀이되는 겁니까?
"투자자들이 스스로를 과신(過信)할 때 위기가 싹틉니다. 새로운 전망과 새로운 혁신, 그리고 새로운 투자자들이 무대에 등장하고, 돈 벌기가 정말 쉬워 보이고, 위험은 과소 평가되고…. 그러면 결과는 필연적이죠. 이런 과정은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좇는 인류에겐 타고난 운명과 같아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 역사에서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설령 모든 사람들이 잠시 동안 아주 보수적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궁극적으로 결과는 똑같을 겁니다."
―인생에서 여러 차례 위기를 목격하셨을 텐데, 이번 위기는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요?
"이번 위기는 아주 특별합니다.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 첫째는 금융 부문에서 발생한 문제의 복잡성입니다. 둘째는 기록적으로 큰 가계(家計) 부채로부터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및 투자 축소)을 하라고 재촉하는 압력입니다. 끝으로 미국에서 촉발된 위기가 아주 빠르고, 드라마틱하게 글로벌 충격으로 전이됐다는 겁니다. 어떤 측면에선 대공황에 견줄 만큼 상황이 나쁘다고 느낄 수도 있죠."
그는 "10대 시절에 겪었던 대공황은 정말 끔찍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원인이나 영향으로 볼 때 대공황과는 다르다"며 "최악은 아니고, 두번째쯤 된다"고 선을 그었다. '최악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그의 답변은 예상과 달리 밝지 않았다.
―언제쯤 경제 위기가 극복될까요?
"끝을 단정 짓기가 쉽지 않아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될 겁니다."
―1~2년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요?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인데….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금융 부문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마도 위기가 끝나면 모든 경제 주체들이 새로운 세상(new world)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미국 경제가 올 연말쯤 회복된다고 말하면 너무 낙관적일까요?
"연말쯤이면 경기 하강이 멈추는 징후가 나올 겁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 금융 시스템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그동안 과도한 차입을 해왔어요. 그런데 이제 소비자는 차입자(borrower)가 아니라 예금자(saver)가 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가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연말쯤이면 바닥을 찍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구루의 말에 진작 귀를 기울였다면 이번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피터 번스타인(Bernstein)은 2004년 머니(Money) 지(誌)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 문제를 '트윈 타워(Twin Tower)'라고 부르며 자신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라고 했다. 그는 "과도한 차입이야말로 모든 경제적 재앙과 혼돈의 근원이라는 점을 경제사가 입증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 1997년 월가(街)의 투자전문가 모임인 재무분석사협회(CFA Institute)로부터 최고 투자가상(Award for Professional Excellence)을 받았다. 이 상은 존 템플턴·워런 버핏·존 네프 등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 대가(大家)들이 수상했다.
그는 아흔이란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모든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또렷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수많은 경험과 수련을 통해 '마스터 요다'가 얻었던 강력한 포스(force)가 그에게서도 느껴졌다. 특히, '리스크의 거장'답게 리스크의 역사와 철학적 배경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