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쓰레기 처리 비용도 줄이고 새로운 자원도 획득할 수 있다. 국내 연구진이 반도체 쓰레기를 재활용하면서 유독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기술을 개발했다.
반도체 원료인 잉곳을 웨이퍼로 만드는 과정에서 쓰레기에 해당하는 실리콘 슬러지가 발생하는데 이를 가공해 고부가가치의 나노 분말을 획득하는 것이다. 나노 분말은 건축, 페인트 등에 들어가는 첨가제로 활용된다.
◆쓰레기에서 산업용 나노 분말 만든다
잉곳은 직육면체의 덩어리이다. 이것을 CD처럼 얇게 잘라낸 것인 반도체 웨이퍼다. 절삭 과정에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절삭유(油)와 연마재인 실리콘 카바이드(carbide)가 들어간다. 실리콘 쓰레기는 절삭 과정에서 나온 부스러기인 잉곳 조각들이 석유, 카바이드와 섞인 것을 말한다. 바로 실리콘 슬러지다. 실리콘 슬러지는 잉곳에 함유된 수분과 절삭유 등이 섞여 있어 찐득찐득한 액체 상태이다.
통상 실리콘 슬러지는 바다에 버리거나 땅에 매립한다. 당연히 환경 정화를 위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현재 t당 20만원의 처리 비용이 들어간다. 액체 상태의 실리콘 슬러지를 밀가루 같은 나노 분말로 만드는 것이 실리콘 쓰레기 재활용 기술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장희동 박사팀은 실리콘 슬러지에서 수분을 없애고 알칼리 촉매와 알코올을 사용해 실리콘화합물을 만들었다. 기존 실리콘 슬러지 재활용 공정에서는 유해물질인 염산 가스가 배출됐다. 장 박사팀은 알코올을 첨가해 염산 가스가 없는 친환경적 재활용 공정으로 바꿨다.
실리콘화합물은 아직까지는 액체 상태다. 최종 목표인 나노 분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섭씨 1600도에서 열 분해를 시킨다. 건조시키는 동시에 실리콘 화합물에 에너지를 투입해 구조를 분해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리콘 화합물이 밀가루처럼 흩날리는 분말로 변한다.
장 박사팀이 개발한 나노 분말은 크기가 30㎚(1㎚는 10억분의 1m) 이하이다. 기존 나노 분말은 100㎚. 입자가 작을수록 나노 분말의 효과가 높다. 나노 분말은 실란트(창틀에 창을 끼울 때 사용하는 접착제), 고무, 수성 페인트 등에 첨가되어 강도와 점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나노 분말은 국내에만 연간 300억원이 수입된다. 쓰레기가 고부가가치의 원료로 변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답게 해마다 실리콘 슬러지가 2500t이나 배출된다. 실리콘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쓰레기 처리 비용과 수입 대체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장 박사팀은 관련된 연구 결과를 지난해 9월 전문학술지 '울트라마이크로스코피(Ultramicroscopy)'에 발표했다.
◆기름에 섞이는 분말 개발이 다음 과제
실리콘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술의 다음 단계는 실리콘 슬러지의 25%를 차지하는 실리콘 카바이드를 회수해 산업용 연마재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물질의 표면을 갈아 매끄럽게 만드는 연마 공정에는 다이아몬드가 최적 물질로 꼽힌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실리콘 카바이드는 연마 효과에서 다이아몬드 다음이지만, 가격대비 효과로는 최고다. 이 때문에 웨이퍼 제조 공정에서도 실리콘 카바이드가 사용된다.
일본 간사이 대학교의 시바타 교수는 2007년부터 실리콘 슬러지에서 실리콘 카바이드를 얻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기술의 핵심은 물과 나노 분말의 친소(親疏) 관계를 역전시키는 데 있다. 물과 잘 붙을 때 친수(親水)성, 물에서 멀어지면서 기름과 잘 붙으려 할 때 소수(疏水)성이라 한다. 실리콘 잉곳을 갈면 수분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 실리콘은 친수성이다.
장 박사팀은 실리콘 나노 분말을 소수성으로 바꿔 기름에 잘 섞이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나노 분말을 소수성으로 전환하면 카바이드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활용폭도 커진다. 장 박사는 "소수성 나노 분말은 접착제인 실란트의 성능을 높이고 기름이 함유된 유성 페인트에도 사용될 수 있는 등 적용 범위가 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