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주혁(38)씨는 최근 집으로 날아온 카드 명세서에 '할부이자 8000원'이라는 항목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모든 가맹점에서 3개월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다는 말에 일부러 발급받았던 카드였는데, 예상치 못한 할부 이자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해당 카드사 상담원은 "3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중단된다고 이메일로 한번 알려드렸는데 미처 보시지 못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런가 하면 아파트를 전세 내준 서울의 장모(35·주부)씨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 해지를 요구하자 모자란 전세금 2000만원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두 달 전 상담할 때만 해도 은행에선 시가 3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잡으면 1억3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최근 갑자기 '자세히 계산해 보니 9000만원 정도밖에 안 되겠다'고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장씨는 "돈 쓰라고 만날 권하던 은행이 왜 갑자기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금융회사들의 '배신의 시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이나 카드, 보험 등 금융회사들이 채산성을 이유로 그동안 벌여놓았던 각종 서비스를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연회비 등 각종 수수료율을 올리고,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축소하거나 대출 연장을 거부하며,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에 인색해지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금융기관들은 이미 반 토막 펀드나 키코(파생금융상품) 등으로 고객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인데, 혼자 살겠다고 고객을 돕긴커녕 비올 때 우산까지 뺏는 한심한 상황까지 오게 됐다"고 지적했다.

짠돌이가 된 카드사

새해 들어 카드사들이 연회비와 할부·현금서비스 수수료율을 일제히 인상함에 따라, 카드 이용자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현대카드는 이달부터 가입하는 신규 회원에 대해 연회비를 최고 50% 인상했다. 한국씨티카드는 이달부터 카드론 수수료율을 2% 올렸고, 삼성카드는 지난해 백화점·가전매장 등에서 실시했던 2~3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롯데카드는 일부 카드의 포인트 적립 서비스에 '3개월간 월 평균 30만원 이상 사용'이란 실적 제한을 새로 만들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의 '원자재'라고 할 수 있는 조달 금리가 2%포인트 이상 올라 땅 파서 장사하지 않는 이상 각종 혜택을 줄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회사원 노재웅(35)씨는 "회사 수익성 높이겠다고 고객 서비스를 축소하면서 당초 약속을 완전히 뒤엎다니 사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보험금 지급 인색

지난달 대학병원에서 암(癌) 수술을 받은 60대 주부 A씨는 3~4일이면 나온다던 보험금이 보름 이상 지체되고 있어 냉가슴을 앓고 있다. A씨는 "보험사에 계속 문의하고 있지만 계속 심사 중이라는 답변만 듣고 있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에 인색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신용경색 여파로 더욱 깐깐해지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황 땐 생계형 보험사기가 늘어나는 데다, 보험금을 타내려는 적극적인 가입자들이 많기 때문에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조사를 더 엄격히 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대출 조이기로 뒤통수치는 은행들

은행들의 태도도 싹 달라졌다. 예전엔 아파트 문전까지 찾아와 대출을 권유했는데, 요즘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신한은행은 주택 가치를 평가할 때 국민은행이 집계하는 부동산 시세 대신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해서 보수적으로 대출 한도를 산출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체 신용등급 1∼10등급 중 7, 8등급 고객에게도 신용대출을 해줬지만, 지금은 자제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이달부터 아파트 중도금 대출 등 집단대출 심사시 입지 등 사업성을 철저히 따지고 있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은행들이 집단대출을 서로 해주려고 대출 금리 인하 경쟁을 벌였던 것과 딴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