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TV에 들어가는 타이밍 컨트롤러와 LCD 구동칩 등을 생산하는 반도체 부품업체 티엘아이는 지난 5월 고객 회사인 LG디스플레이로부터 141억원을 투자받았다. LG디스플레이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13%의 지분을 확보하며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 투자로 티엘아이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든든한 납품처를 확보했고 새로운 제품 연구개발(R&D)을 위한 자금 여력도 갖게 된 것이다. 티엘아이는 올해 3분기(7~9월)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30% 이상 증가하는 등 업계 경쟁업체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LG가 올해 협력회사에 대한 직접 투자라는 새로운 상생경영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기술·교육 지원을 넘어 직접 자금을 투자함으로써 협력회사를 글로벌 경영의 동반자로 삼겠다는 뜻이다.
■직접투자·공동구매 등 새로운 상생 모델
LG디스플레이는 같은 달 LCD 핵심장비의 하나인 스퍼터(박막증착장비)를 생산하는 아바코에도 61억원을 투자해 지분 19.9%를 확보했다. 티엘아이와 마찬가지로 LG디스플레이는 이 회사의 2대 주주가 됐다. 아바코는 올 하반기 생산 라인 신·증설 투자를 진행 중인 LG디스플레이로부터 370억여원의 납품 계약을 따내는 등 투자받은 효과를 200% 누리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외에도 지난 6월 LCD 주요부품인 백라이트유닛(BLU)을 생산하는 뉴옵틱스에도 90억원대의 자금을 투자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협력업체는 단순한 납품업체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라며 "기술력 있고 유망한 협력회사에 대해 경영권을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직접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도 올 초부터 원재료와 부품을 협력회사와 공동으로 구매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다.
LG전자의 한 해 원자재 구입 규모는 2조원대. 여기에 협력회사 필요 물량을 더해 구입하면 '규모의 경제'로 인해 협력회사가 개별적으로 살 때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해진다. 전명우 상무는 "공동구매로 구입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협력회사는 원재료 가격 상승 시 즉시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출범 2003년부터 상생경영 본격화
LG의 상생경영은 지주회사가 출범한 직후인 2003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본무 회장이 '정도(正道) 경영'을 선포하면서 협력회사 관계에 대해서도 과거와 다른 발상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LG는 당시 정도 경영 위반 사례 제보를 받는 '정도 경영 사이버신문고(ethics.lg.co.kr)'를 설치하면서 그 안에 협력회사 고충처리 신고센터를 뒀다. 각종 불공정거래 사례를 근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실제로 1·2차 협력회사 간 대금 지불 갈등 등이 이곳에서 해결되고 있다.
각 계열사도 상생경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2004년부터 협력회사가 첨단기술을 개발하거나 시설 확장을 할 때 자금을 지원하는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협력회사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상환할 때는 현금뿐만 아니라 물품 대금으로도 낼 수 있게 했다. 2005년부터는 디자인·마케팅·생산·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중견인력을 협력회사에 파견하는 '중견인력 이동제도'를 마련해 경영 노하우 전수에도 나서고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노하우와 시장 정보를 협력회사에 제공하는 'LG화학 테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출성형을 교육하는 '인젝션 스쿨', 압출기 작동 원리를 가르치는 '익스트루전 스쿨', 플라스틱 제품의 설계 및 개발단계 노하우를 전하는 '디자인 스쿨' 등을 수시로 열어 협력업체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6개 주요 계열사, 내년 100% 현금결제 시행
LG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 침체가 가속화될 내년에는 협력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LG전자와 LG화학, LG이노텍, LG생활건강, LG CNS, LG엔시스 등 6개사는 지난달 'LG 하도급 공정거래 협약 선포식'을 갖고 내년부터 1700여개 하도급 협력회사에 100% 현금결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 금융시장 자금 경색으로 인한 협력회사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협력회사에 대한 각종 금융지원 규모를 올해 1750억원에서 내년 3430억원으로 96% 늘린다.
LG디스플레이는 앞서 지난 10월부터 부품·원자재를 납품하는 56개 협력회사에 대해 전액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연간 납품 대금 결제 규모는 1조원에 달한다.
정상국 LG 부사장은 "협력회사의 경쟁력은 곧 LG의 경쟁력"이라며 "협력회사들이 내년 어려운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