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와 불황으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GM 등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업체들도 감산·감원을 하는 등 '생존 게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 자동차업계도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면 생존을 자신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고유모델 포니를 생산한 이후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에 올라섰다. 그러나 최근 해외 경쟁업체들에 비해 생산비용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경쟁력이 차츰 떨어지고 있다. 또 감산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노사갈등이 증폭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이항구 기계산업팀장은 "한국 자동차산업은 연구소나 생산기술 분야 인력들은 세계최고 수준의 비용 대비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생산·판매 노조 쪽의 생산성이 너무 떨어져 다른 부분의 장점까지 잠식해 버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 단계 도약하느냐, 여기서 주저앉느냐는 국내 자동차업계에 존재하는 생산·판매 등의 비효율을 어떻게 걷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GM보다 더 심한 생산 비효율… 현장 작업질서 바로 세워야

최근 위기가 닥치자 노사가 생산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아차가 대형차인 카니발 조립라인에서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함께 생산하는 데 합의했다. 또 현대차가 단종된 에쿠스 라인의 유휴인력을 다른 공장에 배치했다. 노사가 마치 대단한 합의를 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해외 경쟁 업체에 비하면 한참 뒤늦은 결정이다. 일본은 물론 유럽 업체들에서도 오래전부터 단일 조립라인에서 3~4개 차종을 함께 생산해왔으며 근로자를 다른 조립라인에 배치하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자동차산업연구소 박홍재 소장은 "현재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노사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생산라인의 재편성이나 인력 전환배치가 불가능하다"며 "우리도 외국처럼 자동차 수요에 맞춰 각 공장의 생산차종변경과 인력을 탄력적으로 배치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차는 안 팔아도 그만, 고객서비스는 뒷전… 판매조직 뜯어고쳐야

자동차 판매조직은 소비자를 상대하는 최일선 부서로 고객 요구를 수렴해 이를 차량개발까지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기아차의 판매조직은 이런 일을 수행하기는커녕 기본업무인 차를 파는 일조차 게을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판매조직의 '수술'이 생산노조보다 더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현대·기아차 영업망 중 절반은 대리점, 나머지 절반은 판매노조원이 속한 회사 직영점으로 구성돼 있다. 대리점 영업사원은 판매대수에 따라 성과급을 받지만, 직영점 영업사원 즉, 판매노조원은 1년에 차를 한 대도 못 팔아도 월급의 80%를 받으며 해고 위험도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업무시간 중에 개인사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돌보거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직원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도요타 등 일본의 영업사원은 매일 어떤 고객을 만나 어떤 상담을 했는지 꼼꼼히 일지를 기록한다.

더 큰 문제는 경영진이 노조를 바꾸기보다, 관행을 뜯어고치려던 임원을 오히려 해고하는 식으로 노조를 달래왔다는 점이다. 기아차 국내영업본부의 한 고위임원은 1년에 차를 몇 대도 못 파는 실적불량자를 대상으로 '사내 전직(轉職)제도'를 도입해 경쟁을 유도하려고 했다가 노조가 사무실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농성하는 바람에 곧 해임됐다. 가톨릭대 김기찬 교수는 "도요타가 강한 것은 생산보다 판매조직의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며 "국내 판매조직도 효율성 위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임단협 중앙교섭 승리를 위한 부분파업에 돌입한 지난 7월10일,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소 형차 생산라인이 멈춰서 있다. 조선일보 DB

◆노사 협상 매년 벌여 갈등 자초

외국은 3~5년 정도에 한번씩 노사협상을 벌이는 데 반해 국내는 1년마다 협상을 벌여, 노사갈등을 반복하는 관행도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1년마다 임금 또는 단체 협상이 반복되고, 한 번 협상하면 3개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현행 노사협상 법규의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사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현대차 노사관계 전문가는 "노조원들이 노조 울타리만 벗어나면 곧바로 고용이 불안해질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강성노조가 쉽게 변하기 어렵다"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고용을 전제로 생산성 향상과 임금삭감에 동의하는 등의 노사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직군이나 일반 직원보다 훨씬 다양한 작업이 가능한 숙련공의 경우 유럽처럼 인센티브를 주거나 조직 내에서 명예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