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심판 잘못이 아냐.”2000년 윔블던테니스 대회에 출전한 안나 쿠르니코바가 경기 도중 심판 판정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는 공이 경기장 라인을 벗어났는지를 두고 판정 시비가 자주 일어난다. 그렇다면 공이 선을 벗어났다고 하는 아웃(out) 판정과, 안쪽에 떨어졌다고 보는 인(in) 판정 중, 어느 쪽에서 오심(誤審)이 더 자주 발생할까.

확률상 반반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아웃 판정에서 더 오심이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판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시각 정보 처리 능력에 내재된 오류 때문이다.

0.1초 전의 과거를 보는 눈

사람이 사물을 본다는 것은 사물에서 반사된 빛이 망막에 맺히고 이 정보가 시신경을 거쳐 최종적으로 뇌에서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망막에 맺힌 상이 뇌에서 인식되기까지는 0.1초 정도가 걸린다. 말하자면 우리는 늘 0.1초 이전의 세상을 보는 셈이다. 이 정도면 짧은 시간 같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물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수비수가 0.1초 전의 공만 보고 있다면 늘 공을 놓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이 문제를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이를 테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물이라면 0.1초 뒤에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간주하고 그때의 모습을 뇌가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시각 정보 처리에서 나타나는 0.1초의 지연 현상을 0.1초 뒤의 장면을 예측하는 일종의 허상을 통해 보정하는 것이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휘트니(Whitney) 박사는'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지 28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테니스 경기의 오심 분석을 통해 인간 뇌의 예측 보정에 관한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윔블던 테니스 경기에서 4000건의 사례를 임의로 선택한 뒤 오심 여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83건이 오심으로 밝혀졌다.

만약 심판이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웃이든 인이든 오심은 반반에 가깝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70건의 오심이 아웃을 선언했을 때 발생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리 눈은 공이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갔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애매한 상황이라면 공이 더 멀리 간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린 위의 잔디를 굴러간 골프 공이 갑자기 홀 컵에 빠졌을 때 이따금 공이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휘트니 박사는 "심판뿐 아니라 선수나 관중들도 같은 오류를 범한다"며 "판정에 문제를 제기할 때는 가능하면 아웃 선언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심리학과 정상철 교수는 "움직이는 물체가 찰나에 방향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 눈의 이런 예측 보정은 대부분 맞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능 덕분에 야구 선수의 슬라이딩 캐치와 테니스 선수의 멋진 백핸드가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로봇이 테니스 심판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정 교수는 "아웃, 인 판정에만 국한하면 카메라 눈으로 판정하는 게 정확하겠지만, 심판은 훨씬 다양한 시각정보를 종합해 판단하므로 로봇이 인간 심판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공시각을 연구하고 있는 고려대 이성환 교수도 "로봇의 눈은 인간처럼 중요한 정보는 고해상도로 처리하고 다른 정보는 저해상도로 보는 선택 능력이 없어 정보처리 속도가 훨씬 느리다"고 말했다.

착시(錯視)도 시각 처리 지연 탓

사선이 모이는 점 주변의 수직선은 밖으로 휘어져 보인다. 사선이 점으로 수렴하면 우리 뇌는 앞으로 가는 장면으로 착각해 그때 나타나는 장면을 미리 인식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물을 실제 모습과 달리 보는 착시(錯視)도 같은 원리로 설명되고 있다. 미국 렌슬레어 공대의 마크 챈기지(Changizi) 교수는 지난 5월 '인지 과학(Cognitive Science)'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심리학 교과서에 흔히 등장하는 착시는 우리 눈이 0.1초 뒤의 상황을 앞당겨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자전거 바퀴살처럼 직선이 한 점으로 모이는 그림에 수직으로 또 다른 선들을 그려 넣으면 수직선은 중심 부근에서 밖으로 휘어져 보인다. 챈기지 교수는 "사선이 한 점으로 모이면 SF영화에서 우주선이 순간이동을 할 때처럼 사람의 눈은 앞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며 "우리 뇌가 앞으로 나갔을 때의 모습을 예측해 인식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가로수가 늘어선 길을 자동차로 달릴 때 가로수가 옆으로 휘어지면서 뒤로 밀려나는 것 역시 같은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