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TV 1위 (시장점유율 40%), 휴대폰 1위(〃33%), 모니터 1위 (〃30%), 냉장고 1위 (〃38%). MP3 1위(〃17%), 기업 브랜드 인지도·선호도 1위….'

러시아 시장에서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위상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시장이 개방된 1990년대부터 삼성은 치밀하고 체계적인 브랜드 마케팅으로 러시아인들의 마음과 감성을 사로 잡았다. 1999년 러시아의 대외채무 지불유예(모라토리엄)선언 직후 수많은 글로벌 업체들이 러시아를 떠났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레닌 도서관에 광고판을 새로 만들어 의리와 신뢰를 보여줬다. 톨스토이, 볼쇼이 극장,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러시아가 자랑하는 문학과 발레와 역사의 보고(寶庫)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러시아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던 볼쇼이 극장을 살린 것도, 러시아 정부조차 엄청난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에르미타쥐 박물관의 문화재 복원 사업이 가능했던 것도 삼성의 후원 덕분이었다.

홍콩섬 완차이 일대 야경

2003년부터 러시아 작가들은 '삼성 톨스토이 문학상'을 꿈꾼다. 휴머니즘과 관용주의를 표방한 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저명 작가와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선정하는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벌이는 '지역별 문화 연계를 통한 프리미엄 브랜드 마케팅'의 한 단면이다.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100대 브랜드'에서 2007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69억 달러로 세계 21위를 차지했다. 2005년부터는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전자업체로 군림하던 소니를 제쳤다.

삼성 브랜드를 C+에서 A로 끌어 올려라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은 1990년대 중반 태동했다. 당시 삼성은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브랜드였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낙제를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었다. 삼성의 제품은 해외 시장에서 제품 평균 가격의 70~80% 수준을 받았고, 회사 이미지는 "저가(低價)의 그저 그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 에 머물렀다.

획기적 전환의 계기는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이 제공했다. 이 회장은 1996년 '삼성의 브랜드를 C+에서 A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해외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 수립의 신호탄이면서, 국내 최초 '기업 글로벌 브랜드 전략'의 시작이었다. "당시 삼성 내부에는 마케팅이 장기 투자라는 개념이 없었고, 판촉 수준에 불과한 마케팅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고 김태호 삼성 업무지원실 전무는 말했다.

뉴욕 거리를 밝히는 삼성의 옥외 광고물들


단일 브랜드 '삼성'을 키워라

삼성이 우선적으로 힘쓴 것은 '삼성'이라는 단일 브랜드 육성이었다. 이를 위해 모든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전자 중심으로 전환했다.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해외 사업을 하는 관계 회사들이 각자 커뮤니케이션을 맡았지만, 모두 중지했다. 회사별·지역별로 제 각각이던 슬로건도 모두 없앴다. 대신 제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디지털 핵심 제품군인 휴대폰, 디지털 TV, TFT-LCD로 한정하고, 어디서나 통일된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한 단일 슬로건을 제정해 사용했다. 1997~1999년 'Challenge the Limit', 2000~2004년 'Samsung DigitalAll, Everyone's Invited', 2005년 이후에는 'Imagine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1990년대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설치된 삼성의 옥외광고. 현재는 최첨단 LED 광고로 바뀌었다.


선진국 시장에서 정면 승부한다

삼성은 정면 승부를 택했다.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 대신 어렵더라도 성공했을 때 효과가 큰 선진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를 위한 핵심 수단이 스포츠 마케팅이다. 삼성은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스폰서 기업으로 나섰다. 삼성이 참여를 결정했을 당시만 해도 '모험'으로 간주하는 국내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선 코카콜라와 공동으로 24개국 34개 도시에서 성화봉송을 후원했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시도였고, 대성공을 거둬 초일류 브랜드로서의 삼성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메인 스폰서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순동 삼성 브랜드관리위원회 위원장(사장)은 "올림픽 마케팅은 삼성이 중저가 가전(家電) 브랜드에서 무선 통신, 디지털 제품 등 첨단 기업 이미지를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현재 월드컵, 아시안게임, 미국 LPGA 등의 스폰서십을 맡아 프리미엄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한 때 3만대에 달했던 해외 공항의 카트 광고는 대폭 줄였다. 대신 미국의 타임스퀘어, 영국의 피카디리 거리, 중국상하이, 홍콩 완차이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광판과 모스크바의 명물거리의 밤을 삼성의 휘황한 옥외 광고들이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