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주부 이은경씨는 집 근처 수퍼나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식품 겉포장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최근 중국 멜라민 분유 사태 후 원산지 국가가 어딘지 꼼꼼히 확인한 뒤 가급적 중국산은 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원산지 표시가 숨은 그림 찾기보다 더 어려워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5일 한 대형마트를 찾은 이재란(57)씨도 "중국산 제품의 안전성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물건을 살 때 원산지나 성분표시 등을 확인하고 있지만 봐도 잘 모를 때가 많다"며 "식품안전 관련 정보를 좀 더 일목요연하게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태제과의 미사랑 카스타드와 제이앤제인인터내셔널이 수입한 밀크러스크에서 멜라민 성분이 검출되면서 중국산 식품 안전 파동이 국내로 번지고 있다. 특히 해태제과의 미사랑 카스타드는 어디에도 중국산 전지분유를 사용했다는 표기가 없어 현행 식품 표기제도가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부실한 식품표시

미사랑 카스타드의 경우 제조지가 중국이란 사실과 주요 재료인 쌀과 팜유, 코코넛분말의 경우는 중국과 말레이시아산을 썼다는 내용이 표기돼 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전지분유는 성분표시만 돼있을 뿐 어디 것을 썼는지에 대한 표시가 없었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주요 성분이 아닌 경우에는 원산지를 표시할 의무가 없다는 정부 고시 원칙에 따랐다"고 말했다.

제품 표시기준은 식품위생법 10조에 의거한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에 규정돼 있다. 이에 따르면 제조업체는 제품 겉포장에 제품명, 식품의 유형, 업소명과 소재지, 제조연월일, 내용량, 원재료명, 성분명 및 함량, 영양성분을 표시하도록 돼있다.

제조업계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주요 제품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수입식품의 의존도가 매우 높아 75~80% 가까이를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들여오는 저가 식품들"이라며 "특히 아이들이 먹는 기호식품 중 초콜릿바나 과자류의 경우는 원산지 표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산지 표시도 똑같이 '부실'

'수입산'이라고 통칭되는 원산지 표시도 문제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63종류의 식용유에 대한 원산지 표시를 조사한 결과, 단순히 '수입산'으로만 표시된 제품이 22종(34.9%)으로 가장 많았다. 그밖에 이탈리아산 16종(25.4%), 스페인산 9종(14.3%), 국산 6종(9.5%) 순이었다. 또 대두유, 옥수수기름은 전 제품에서, 참기름은 63.6% 제품이 특정 국가가 아니라 단순하게 '수입산'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이런 '수입산'의 표시는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대한 원산지 표시로 한 나라에서 원료수급이 어려운 경우 예외조항을 두어 국가명을 표시하지 않고 '수입산'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업체들이 이런 예외조항을 교묘하게 이용, 의도적으로 원산지 표시를 소극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소비자원의 정윤희 식품미생물팀장은 "업체의 원활한 생산·판매활동을 돕기 위해 이런 예외규정을 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이는 원산지 국가명에 대한 소비자들의 알 권리와 안전할 권리를 명백하게 제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 속에 대책 나선 업계

표시기준의 부실 등으로 소비자 불신이 커지자, 업계는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해태제과는 앞으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유가공 제품은 수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해태제과는 유가공 제품이 포함되지 않은 상품에 대해서도 생산일자별로 안전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롯데백화점은 중국산 식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간 19일부터 모든 식품매장에서 중국산 유제품이 함유된 과자·초콜릿 제품에 대한 판매를 중단했다. 롯데백화점은 향후에도 상품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중국산 유제품이 포함된 제품은 팔지 않을 계획이다. 신세계 이마트는 정부의 추가 발표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신세계 김대식 부장은 "해태제과의 미사랑 카스타드처럼 정부 확인결과 멜라민 등 인체에 유해한 요소가 함유된 식품이 발견되면 즉각 판매중지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