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USA(미국 자산 팔고 떠나기)'가 시작되나.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해외 투자가들이 미국 자산 투매(投賣)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금융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미국의 돈(통화·달러)과 주식·채권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현재 '트리플A(AAA)'로 최상급 단계인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당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자칫 '셀 USA'가 본격화될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미국으로선 경제 헤게머니(패권)를 위협당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 위기

미 정부가 AIG에 구제금융을 실시한 뒤인 17일 미 국채 10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전날보다 0.03%포인트 오른 0.26%를 기록했다. 이는 미 국채 1000만달러어치에 대한 보험료가 연간 2만6000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의 10년물 국채는 0.132%다. 미국 국채의 부도 확률이 독일 국채보다 두 배나 높은 것이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도 타격을 입고 있다. 3대 신용 평가회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존 체임버스 국가신용등급위원장은 17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하늘에서 주는 'AAA' 등급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 정부가 AIG에 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해 정부 재정이 악화됐다"고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에서 돈 빼가는 해외 투자가

미국의 천문학적인 재정·경상수지 적자를 떠받쳐주던 해외 투자가들은 지난 7월부터 미국에서 돈을 빼내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재무부는 지난 6월 468억달러의 자금이 순(純)유입된 데 비해 지난 7월 한달 동안엔 929억달러가 순(純)유출됐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가들의 미 국채 매입도 둔화됐다.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은 올 상반기 월 평균 223억달러어치의 미 국채를 매입했으나 지난 7월에는 182억달러어치만 매입, 매입량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 국채 매입을 더욱 꺼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미 정부는 중국 등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은 1조8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에 투자한 상태다. 만약 중국 중앙은행이 미 국채에서 돈을 빼기 시작하면 금융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달러 약세

해외 투자가들의 '셀 USA' 조짐과 달리 미국 내 자금은 안전한 투자처인 미국 국채로 한꺼번에 몰려 3개월 만기 국채의 이자율이 0%로 떨어지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CNN방송은 "194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 국채의 이자율 하락은 달러 가치 하락을 촉발시키고 있다. 해외 투자가들이 미 국채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미 달러화는 17일 유로당 1.4349달러로 거래돼 전날보다 1.6% 하락하는 약세를 보였다.

"그래도 미국밖에 없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Rogoff) 하버드대학 교수는 17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 정부는 최대 1조달러를 들여 이번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로 미 정부가 2000~3000억달러를 썼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는 금융위기에 대비해 1조달러를 쓴다면 금융위기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도 "아시아 각국의 투자가들이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방황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셀(sell) USA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화와 채권·주식 등 미국의 자산을 팔아치우는 현상. 셀 USA가 장기화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基軸)통화 위상이 흔들리게 되고 전 세계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CDS(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

채권이 부도가 났을 때, 제3자가 사전에 정한 대로 손실을 보상해 주는 보험과 비슷한 파생상품 계약. 예를 들어 A은행이 B기업에 돈을 대출해 줄 때 C금융사와 미리 CDS 계약을 맺고 C금융사에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손실 보장을 받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