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그동안 추진해온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본지 8월19일 B1면 보도)

박용만(朴容晩)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하자, 두산은 "기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라고 했다. 두산 인프라코어는 건설기계업종이어서 조선업종인 대우조선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 이 설명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 회장은 인수를 위해 열심히 뛰다가 20일도 안 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었다. 7월31일 제주도 전경련 포럼에서 "대우조선은 매력적인 기업"이라며 인수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게 바로 박 회장이었다. 비슷한 시기, 두산은 의미심장한 TV광고도 냈다.

M&A(인수 합병)의 강자임을 강조하는 기업 이미지 광고로, 핵심 문구는 "30년을 투자해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도 있고 세계 1위 기업을 인수해 30년을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두산그룹의 역사는 112년이지만 최근 10여 년간의 역사는 인수 합병으로 꽉 채워져 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판 기업이 10여 개, 사들인 기업도 10여 개다. 1990년대 중반 주력 계열사였던 OB가 휘청거리자 두산의 박씨 형제들은 자산 매각 결정을 내린 뒤 OB, 한국네슬레, 한국코닥을 팔아치웠다.

이후 두산은 반대로 회사를 사들였다. 김대중 정부 때 공기업인 한국중공업(현재 두산중공업)을 인수했고 노무현 정부 때 대우종합기계(현재 두산인프라코어)를 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두산그룹은 소비재 중심에서 중공업 위주의 그룹으로 성공적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내용을 아는 이들에게 두산이 대우조선 인수 포기를 선언하며 내세운 '기존 사업 역량 강화'라는 핑계는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대우조선은 최근 나온 매물 중 가장 알짜배기이기 때문이다.

진짜 속셈은 뭘까? 업계에서는 몇 가지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첫째가 '정부 압박설'이다. 금융 정책과 관련된 정부 관계자들은 최근 "대기업이 인수합병을 위해 빚을 많이 내는 게 국가 전체를 흔들 수 있다"고 했다. 두산은 기업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대출로 조달해왔다.

이와 관련돼 '자금 압박설'도 나왔다. 두산은 최근 '밥캣'이라는 미국 건설 장비업체를 인수하며 약 5조원을 썼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현금 부족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돌자 주식시장에서 두산그룹 계열사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산 계열사 주가는 대우조선 인수 포기 직후에는 반등했었다

박씨 일가의 도덕성이 대우조선 인수로 도마에 오를까봐 미리 발을 뺐다는 분석도 있다. 두산 박씨 일가는 형제끼리 싸우며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같은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덩달아 대우조선 노조는 "총수(總帥)의 도덕성이 의심되는 기업이 회사를 인수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자 자칫 대우조선을 노리다 오너 일가가 공격받을 상황이 올 것을 우려해 대우조선을 포기했다는 게 업계의 해석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