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더빌트대 연구진이 발견한 색-자소 공감각자는 같은 검은색으로 인쇄된 숫자(위)를 보고 숫자마다 다른 색을 느낀다(아래). 0과 1에서는 별다른 색을 느끼지 못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정지용은 왜 '향수'에서 실개천이 흐르는 모습을 소리로 묘사했을까.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시에서처럼 그림에서 소리를 듣는 사람을 찾아냈다. 하나의 감각 자극에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이른바 '공감각(共感覺, synaesthesia)' 현상이다.

그림에서 들리는 소리

미 캘리포니아공대 멜리사 사엔즈(Saenz) 박사는 지난 4일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시각 자극에서 소리를 듣는 사례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람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작은 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뭔가가 '휙'하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사엔즈 박사는 똑같은 동영상을 수백 명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느낌을 물었다. 그러자 3명 정도가 소리를 들었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점들이 움직이거나 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다양한 시각자극을 줬다. 역시 '쿵'하는 소리나 '윙'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공감각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과거 전보를 보낼 때 사용한 모스 부호를 소리와 시각 자극으로 만들어 각각 공감각자와 일반인에게 제시했다. 모스 부호는 스위치를 길게 누르는 것과 짧게 누르고 떼는 것을 통해 문자를 전송한다,

실험 결과 공감각자나 일반인 모두 소리로 모스 부호를 나타냈을 때 85%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반면 빛이 켜지고 꺼지는 시각 자극으로 표현했을 때는 일반인은 55%의 정확도를 보인 반면, 공감각자는 여전히 85%의 정확도를 유지했다. 이들에게는 빛으로 나타낸 모스 부호 역시 소리로 들린 것이다.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한 칸딘스키의'구성'연작 중 8번. 화가 클레, 시인 보들레르와 랭보, 음악가 리스트도 칸딘스키처럼 공감각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뇌신경 교차 연결 이론이 우세

가장 흔한 공감각은 글자나 숫자를 볼 때 특정한 색을 함께 느끼는 '색-자소 공감각'이다. 미 밴더빌트대의 토머스 팔메리(Palmeri) 교수는 2002년 5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WO'란 가명의 한 남자가 2는 오렌지색, 5는 녹색, 6과 8은 진한 파란색으로 봤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흰색의 5들 사이에 같은 흰색의 2가 있으면 모양이 비슷해 쉽게 구별하지 못하지만, WO에게는 녹색 5 사이에 오렌지색 2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여 쉽게 찾아냈다. 반면 일반인들은 6과 8이 섞여 있어도 모양이 달라 쉽게 찾아내지만 WO에게는 같은 파란색이어서 오히려 잘 구별하지 못했다.

이 같은 공감각의 원인에 대해서는 각각의 감각신호를 처리하는 신경들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실제로 색-자소 공감각자의 뇌를 찍어보면 흑백으로 인쇄된 숫자나 글자를 볼 때 뇌의 숫자인지영역과 함께 색 처리 영역도 활성화됐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Ramachandran) 박사는 독립된 각각의 감각영역이 이처럼 교차연결(cross-wiring)되는 것은 태아의 뇌가 형성될 때 신경들이 각각 따로 분리되는 일종의 '가지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공감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06년 영국 런던대의 신경과학자인 재미 워드(Ward) 박사는 공감각자들에게 런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을 그림으로 묘사하게 했다. 일반인 200명에게 100개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음악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을 고르게 하자 공감각자들이 해당 음악에 대해 묘사한 그림을 대부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