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침체에 빠진 러시아 증시가 전쟁이라는 또 다른 악재의 폭격을 맞았다. 지난 8일(현지시각) 러시아가 그루지야 내 친(親)러시아 성향의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야를 지원하기 위해 그루지야의 공군기지를 공격하며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러시아 RTS지수는 전날보다 약 6.5% 급락한 1722.71로 마감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지난 1월 이후 가장 컸다.

이날 하락으로 올 상반기 전 세계 증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두각을 나타냈던 러시아 증시는 작년 5월의 1700대 초반으로 돌아갔으며 지난 5월 고점 대비 30.8%나 떨어졌다.

그간 주가 상승을 견인했던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이란 무기를 잃어버린 차에 전쟁이란 악재를 만난 러시아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유가·원자재 가격 변동에 지나치게 민감해

러시아펀드는 브라질펀드와 함께 소위 '러브' 펀드로 불리며 지난 상반기 동안 국내 해외 주식형펀드 투자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자원부국인 두 나라 증시가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의 수혜를 입으며 높은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월 중순 이래 국제유가가 고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원자재 가격 또한 하락세로 접어들자 러시아 증시 또한 동반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러시아는 석유, 천연가스, 니켈 같은 천연광석 등 에너지 자원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한다. 또 수출의 90% 이상을 에너지 관련 부문이 차지한다. 지난 8일의 주가 폭락도 러시아 내 1·2위 석유업체인 로스네프트루코일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업종이 주도했다. 같은 자원부국이지만 브라질의 경우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의 충격에 대해 내수가 어느 정도 안전판 역할을 해주는 데 비해 러시아는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변동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다.

이 같은 산업구조는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는 최근 한 달간 펀드 수익률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6개월 평균 수익률이 -10.88%로 해외 주식형펀드 전체 평균인 -12.73%보다 양호했던 러시아펀드는 최근 한 달간 평균 수익률이 -14.79%로, 해외 주식형펀드 전체 평균수익률 -2.90%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떨어진다. 브라질펀드의 최근 한 달 평균 수익률인 -6.76%과 비교해도 수익률이 급격히 악화됐음을 알 수 있다.


◆전쟁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듯

다만 증시 전문가들은 지난 8일 발발한 그루지야와의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난다면 러시아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0일 그루지야가 이미 항복제안서를 러시아 측에 전달했으나 러시아측은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고 11일에도 교전은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삼성투신운용 김기연 펀드매니저는 "전쟁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악화시켜 단기적으로 러시아 주가를 급락시키긴 했지만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러시아는 GDP가 높고 개인 소비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주식시장 전망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러시아와 미국, 유럽 같은 서방 국가 간의 갈등으로 번질 경우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가 부적절한 반응을 하고 있다"며 푸틴 러시아 총리에게 유감을 표시했다.

굿모닝신한증권 이계웅 펀드리서치팀장은 "최근의 주가 하락은 원자재 가격 하락 외에 수급 불균형에 따른 측면 또한 강하다"며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러시아 증시에서 미국이나 유럽과의 관계 악화는 중요한 매수주체인 이들 국가의 투자자들 참여를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관망할 때

전문가들은 러시아 증시가 현재 저평가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매력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증시 상황이 워낙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당장의 신규투자는 자제하고, 일부 펀드는 환매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증권 박승영 연구원은 "현재 러시아 주식은 주가수익비율(PER·주가가 저평가된 정도를 나타내주는 지표)이 몹시 낮기 때문에 가격 매력이 있는 상태"라며 "하지만 현재 변동성이 워낙 크고 최근의 정책금리 인상 같은 변수가 주가를 더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투자 여부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 김순영 연구원은 "러시아나 브릭스처럼 러시아 관련 펀드를 갖고 있는 투자자라면 일부를 환매하고 그동안 낙폭이 커서 반등이 기대되는 아시아 신흥국펀드로 갈아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