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기아자동차가 부도났을 때 직격탄을 맞았죠. 가장 큰 거래처를 잃으면서 매출이 40% 정도 줄게 됐어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으면 앞으로 못 살겠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영신금속공업은 지난해 매출 555억원 규모의 볼트 및 단조제품 전문 기업이다. 규모는 작아도 자동차에 쓰이는 접지용 볼트(earth bolt)와 건설 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SDS(Self Drilling Screw·스스로 대상물을 뚫고 들어가는 나사의 일종)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1967년 창업한 이 회사는 40년 역사 중 30년 동안 대기업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납품하던 '하청업체'였다. 이런 '안주'의 틀을 깨뜨린 것은 '위기'였다.

2세 경영인인 이정우(李廷祐·46) 사장은 "자체 경쟁력 없이 대기업에 의존하다가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함을 절감했다"며 "1990년대 말에야 기술연구소를 만들고 연구개발에 투자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받은 이 사장은 특히 할리데이비슨, GM 캐딜락 같은 일류 공장을 돌며 고급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절절한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정작 기술연구소를 차렸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이었다. "대학·연구소에서 배출되는 인력이 부족했고, 중소기업연구소에 뿌리내리려는 연구원은 더 드물었어요."

이정우 영신금속공업 사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연구실에서 직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00년 말에야 산업기술진흥협회의 기업부설 연구소 인증을 얻어 석·박사 연구원 고용 지원을 받았다. 지금은 연구원만 16명. 전체 관리직 사원의 15%를 차지한다.

이후 접지용 볼트, 이물질 제거 볼트, 스터드 볼트 등이 잇달아 실용신안등록을 획득했고, 2005년엔 삼성전자 에코(ECO) 파트너로 선정됐다. 지난해는 산업기술진흥협회의 기술경영인상을 수상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성과는 접지용 볼트 개발. 접지용 볼트는 자동차 부품 중 전기가 통해야 하는 배터리와 연결되는 부위에 사용되는 볼트.

"나사의 표면 모양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수십, 수백 번 디자인을 하고 선형(線形) 분석을 하고, 실험만 수천 번 수만 번 했습니다. 덕분에 도요타자동차가 사용하는 접지용 볼트보다 통전(通電)성이나 강도에서 모두 앞서는 제품을 만들었어요. 연구원 모두 진짜 우리가 해낸 일인지 믿지 못했을 정도였지요."

이렇게 개발한 볼트는 국내 자동차 업체는 물론 미국 GM의 전 세계 공장으로 수출 중이다. 유럽의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상담을 요청해 오고 있다.

영신금속공업은 2002~04년까지 매년 6억~12억원의 적자가 나는 중에도 R&D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올해는 매출액의 2%인 14억원을 R&D에 투자할 계획이다. 기술연구소 한승상 선임연구원은 "꾸준히 연구하다 보니 실패한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기술이 효자 노릇을 할 때가 제법 됐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IT(정보기술)산업, 정밀가공 등 15가지 분야의 진출을 시도했지만 외환위기 후 전문성을 가진 특화된 영역에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중소기업의 R&D 기반이 강해지려면 실질적인 산학(産學) 협조가 이뤄져야 해요. 차세대 사업으로 원전(原電)이나 항공기에 들어가는 고강도 볼트, 환경관련 기계제품에 들어가는 정밀 가공 단조품 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