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실험장치가 다음 달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유럽물리연구소(CERN)에서 14년 만에 완공된다. 거대강입자가속기(LHC·Large Hardron Collider)가 바로 그 주인공. 전 세계 1만 명이 넘는 물리학자들은 LHC를 통해 '신(神)의 입자(粒子)'라고 불리는 '힉스(higgs)' 입자의 존재를 규명하는 실험을 하게 된다. 힉스 입자는 그동안 물리학계가 양성자, 중성자 등 입자물리학에 등장하는 모든 소립자가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 원인으로 가정해왔다. 원자(原子)보다 더 깊숙이 들어간 물질의 '근본 중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이번 실험에서 힉스 입자를 찾아내면 현재의 입자물리학 이론은 입증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입자물리학 이론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하 100m에서 빅뱅 재현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초기 우주는 폭발(빅뱅) 직후 엄청나게 뜨거웠다. 이때는 모든 입자들이 질량이 없는 상태였다. 이후 우주가 식어가면서 입자에 따라 여전히 질량이 없는 상태로 남기도 했고 질량을 얻기도 했다. 원자핵이나 전자를 이루는 근본 입자 12종은 질량이 생겼지만, 빛은 빅뱅 초기에나 지금이나 질량이 없는 상태로 남았다.
영국 에든버러대의 힉스(Higgs) 교수는 우주가 식어가면서 각각의 입자에 질량을 전달해 준 또 다른 입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 입자를 힉스 교수의 이름을 따 힉스 입자라고 불렀다. 즉 힉스를 발견해야 우주 빅뱅부터 현재의 소립자 물리학까지 완벽하게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힉스를 찾아내려면 우주탄생 초기로 돌아가야 한다. CERN은 수조원을 들여 지하 100m 깊은 곳에 지름 8㎞의 원형 입자가속기 LHC를 건설했다. LHC는 두 개의 양성자를 강력한 전기장과 자석으로 가속시킨 뒤 빅뱅 당시와 비슷한 에너지로 서로 정면 충돌시키는 실험을 진행한다.
이때 들어가는 에너지는 17 TeV(테라전자볼트·1TeV는 1조 전자볼트). 1.5볼트 소형 건전지 10조 개를 연결해야 얻을 수 있는 에너지다. 힉스 입자 검출 여부는 실험이 본격화되는 2010년경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물리학부의 김선기 교수는 "힉스 입자를 찾지 못하면 물질을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표준모형은 뭔가를 잘못 해석했다는 뜻이 된다"며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데이터 처리도 도전과제
LHC는 크기만큼이나 나오는 실험 데이터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경북대 물리학과 손동철(56) 교수는 "LHC에서는 초당 500조 바이트의 데이터가 쏟아진다"면서 "컴퓨터 저장 매체인 CD로 치면 초당 80만 장에 달하는 분량"이라고 말했다.
물리학자들은 효과적인 데이터 처리를 위해 두 가지 방안을 고안했다. 첫 번째는 방대한 데이터 중에 의미 있는 데이터를 선별하는 작업이다. 이른바 '트리거 데이터 취득 시스템(Trigger Data Acquisition System)'이다. 데이터의 중요도를 판별해 데이터를 없애거나 압축을 해서 최대 10억분의 1 정도로 데이터의 크기를 줄인다.
그렇게 해도 연간 5 PB(페타바이트, 1PB는 1000조 바이트)의 데이터가 쏟아진다. 연간 CD 800만 장 분량이다. 데이터를 처리할 수퍼컴퓨터 구입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해결 방안은 전 세계 컴퓨터 수만 대를 연결하는 '그리드(grid)' 네트워크다. 수퍼컴퓨터를 따로 구매하지 않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만 대의 컴퓨터를 초고속 전용인터넷 회선으로 연결해 같은 효과를 발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CERN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묶어 활용해본 경험이 풍부하다. 현재 인터넷의 일반적인 방식이 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CERN에서 나왔다. LHC 연구를 돕기 위해 이미 미국·유럽·일본에 있는 연구소와 대학의 컴퓨터 수만 대가 연결됐다. 국내에서는 경북대 고에너지물리연구소에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