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 '아이언 맨(Iron Man)'이 개봉 8일 만인 지난 9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미국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과학자들에게도 이 영화는 남다르다. 주인공이 과학자인데다 그가 악당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한 무기 역시 최근 개발 중인 입는 로봇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의 상상력은 과학을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최근 영국의 과학대중지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s)'지는 SF 명작 5편을 선정, 소개했다. 영화도 즐기고 과학도 배우는 꿩 먹고 알 먹는 가족모임은 어떨까.
무중력 우주, 찍찍이 신발 필수
1.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A Space Odyssey, 1968)
SF작가 아서 클라크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함께 대본을 쓴 우주 영화다. 미국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도착하기 전에 나온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행성을 오가는 우주여행을 미리 본 듯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중력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이다.
지구에선 아래로 당기는 중력 때문에 혈액이 하체로 몰리지만, 우주에선 피가 온몸으로 퍼지면서 얼굴이 붓고, 뼈와 근육이 약해진다.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체 일부가 계속 회전한다. 인공 중력을 만들기 위해서다. 또 영화에선 우주인들이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 테이프가 부착된 신발을 신고 다닌다. 실제로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지 않도록 벨크로 테이프에 붙여두고 있다.
영화 '스타트렉'을 보면 우주선이 비행할 때 전투기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러나 거의 진공상태인 우주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우주선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미끄러지듯 비행한다.
나쁜 기억만 골라서 지운다
2.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영화의 단골주제인 기억상실을 다루고 있지만, 사고로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일부러 기억을 지웠다는 점이 다르다. 주인공 조엘(짐 캐리 분)은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이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일부러 지운 것을 알게 됐다. 분노에 사로잡힌 조엘 역시 기억소멸 회사로 찾아가 그녀와 관련된 기억을 지우려 한다.
특정 기억만 지울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없다.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 어떤 치매 환자는 개인적인 기억은 그대로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같은 사실적 기억은 손상되는 경우가 있다. 인위적으로 이런 일을 가능케 한다면 영화의 상상력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엔 약물로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연구 성과도 나왔다. 지난해 미 뉴욕대 연구팀은 쥐에게 전기충격을 주면서 특정 소리를 들려줬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소리만 들어도 전기충격을 받은 것과 같은 반응을 한다. 공포의 기억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뇌 특정 부위의 작동을 저해하는 약물을 주자 소리를 들려줘도 반응을 하지 않게 됐다. 과학자들은 끔찍한 사고를 당한 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 같은 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생 생물 이렇게 큰다
3. 에일리언(Alien, 1979)
SF 공포물의 대명사인 이 영화에선 10년 이상 걸리는 우주여행을 위해 동면상태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빛의 속도로 단숨에 먼 행성으로 여행을 한다는 설정보다는 훨씬 사실적인 묘사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주인공인 우주 괴물의 3단계 성장과정에 대한 묘사 부분에 있다. 우주괴물은 알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사람 머리만한 아기 괴물이 나오고, 이 괴물이 사람을 덮쳐 배 속에 애벌레를 심는다. 아기 괴물은 이후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와 죽지만, 사람 배 속에 들어간 애벌레는 자라나 몸을 뚫고 튀어나온다. 어른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각각의 단계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기생 생물의 생장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본다.
인간 유전자 해독·조작
4. 가타카(Gattaca, 1997)
미래 모든 아이들은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와 조작과정을 거쳐 나쁜 유전자는 제거되고 우성 유전자만 남게 된다. 주인공 빈센트(에단 호크 분)는 자연수정을 거쳐 태어난 '열성' 인간. 그는 우성 인간을 가장해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려 한다.
영화 개봉 3년 뒤 인간의 유전정보를 담은 게놈이 완전 해독됐다. 이후 사람들은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해 출생 전에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앨 수 있다고 기대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언제 질병에 걸릴지, 범죄자 성향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유전자는 확률적인 예측만 가능하다. 최근엔 자라는 환경에 따라 유전자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화 제목 가타카는 우주비행회사의 이름으로, 인간 유전자를 구성하는 4가지 염기 A·G·C·T를 조합해 만든 말이다.
사람도 원격전송 가능할까
5. 솔라리스(Solaris, 1972, 리메이크 판 2002)
폴란드의 작가 스타니슬라프 렘의 소설을 구 소련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로 만들었으며, 2002년 스티븐 소더버그가 리메이크했다. 영화는 솔라리스란 가상의 별을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 프로메테우스를 배경으로 한다. 심리학자 켈빈(조지 클루니 분)은 우주정거장에서 교신이 끊어진 이유를 찾기 위해 파견된다. 우주인들은 이미 정신을 놓은 상태. 도착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켈빈은 자살한 아내 레아가 곁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솔라리스가 그의 기억을 설계도로 삼아 우주입자인 중성미자(리메이크판에는 소립자인 힉스입자로 나옴)로 만든 아내다.
이는 SF영화의 단골 소재인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원격전송)을 연상시킨다. 사람을 구성하는 입자의 양자상태, 즉 물리적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전송하면, 이를 받는 곳에 있는 입자를 이용해 똑같은 사람을 복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1993년 IBM 연구진은 빛의 양자정보인 광자를 원격전송하는 데 성공, 양자암호와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로봇 옷'을 입자
+1. 아이언 맨
영화에 나오는 입는 로봇(wearable robot) 또는 로봇 외골격(robot exoskeleton)은 미국과 일본에서 한창 개발 중이다.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만든 '할(HAL)'은 처음엔 발에 장착하는 보조기 형태였다가 지금은 팔에까지 장착하는 전신형으로 발전했다. 사람이 움직이려고 할 때 발생하는 근육의 전기신호를 감지해 입는 로봇이 움직이게 함으로써, 평소의 4배 힘을 발휘하게 한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개발한 '블릭스(BLEEX)'는 군인을 위해 개발된 다리용 로봇. 로봇 자체 무게 50㎏에 배낭에 실은 32㎏의 짐까지 모두 82㎏을 짊어졌지만 로봇 다리 덕분에 실제로 느끼는 중량은 2㎏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