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스틸만 스트리트(Stillman Street). 세계적인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의 본부를 찾아갔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약 330㎡(약 100평) 넓이의 단층 건물에 들어서니 사무실인지 창고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공간이 나타났다. 물류 창고처럼 기둥과 벽돌로만 돼 있고, 도배도 돼 있지 않은 곳에 책상과 컴퓨터가 군데군데 놓여 있다. 상근 직원은 15명에 불과하단다.

과연 이곳이 연간 6억8400만 명의 네티즌이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곳이 맞나? 기자를 안내한 마케팅 담당 제리 월시(Walsh)는 "예전엔 인쇄소였다"고 설명해 줬다. 인터넷 백과사전의 본부가 구(舊) 미디어를 상징하는 인쇄소 터에 들어섰다니….

응접실에 앉아 있었더니 방금 회의를 마쳤다는 지미 웨일스(Jimmy Wales·42)가 들어왔다. 위키피디아의 창립자이다. 젊은 나이에 '인터넷 박애주의의 사도', '디지털 복음주의자'란 거창한 별명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별명이 주는 느낌과는 달랐다. 배가 약간 나왔지만, 검은색 셔츠와 캐주얼한 재킷이 꽤 잘 어울린다.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의 인생도 그랬었다. 인디애나대학에서 금융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선물·옵션 트레이딩으로 30대 초반 큰돈을 벌었다. "부인과 온 가족이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리고 그는 닷컴 붐에 뛰어들었다. '온라인의 플레이보이'가 되겠다며 남성 포털 사이트인 보미스(Bomis)를 운영해 꽤 인기를 끌었다.

위키피디아재단 제공.

그가 다음으로 도전한 것은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 프로젝트였다. 그게 바로 2001년에 설립한 위키피디아다. 위키(wiki)는 하와이어로 '빨리'란 뜻이다. 결국 위키피디아는 '빠른 백과사전'인 셈이다.

그런데 그는 50만 달러의 사재(私財)를 털어서 만든 위키피디아를 2003년 공익재단(위키피디아재단) 소유로 귀속시킴으로써 다른 사업가들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위키피디아 일로는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는다. 순수 자원봉사자인 셈이다. 그는 7명으로 구성된 위키피디아 재단 이사 중 한 명이다. 위키피디아는 광고를 전혀 받지 않고, 오직 기부금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왜 돈도 안 되는 일에 그토록 매달리고 있을까?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당신의 꿈은 인터넷 재벌입니까? 아니면 세상을 움직이는 사상가?

"(피식 웃으며) 그런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다만 '흥미롭고(interesting)' '재미있는(fun)' 일을 해왔을 뿐입니다. 제가 벌인 일이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죠."

이 대답을 시작으로 그는 인터뷰 내내 'fun'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그는 온라인 백과사전 사업을 처음에 시작한 것도 네 살 때부터 장난감 대신 백과사전인 월드북이나 브리태니커를 뒤적이며 놀던 기억 때문이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트레이더로 일하던 때 역시 "재미있고 쿨(fun and cool)"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재미로 말하자면 위키피디아는 그에게 엄청난 선물임에 틀림없다. 위키피디아는 늘 화제를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작년 말엔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한 고교생이 미국 백악관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인데, 부시 대통령과 조용히 만나고 싶다"고 했다. 물론 장난이었다.

그런데 백악관이 속아넘어갔다. 백악관이 신원 확인을 위해 그림손 대통령의 출생일자와 부모 신원, 취임한 날짜 등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고교생 아틀라손이 그 자리에서 위키피디아를 뒤져 답을 맞혔기 때문이다. 며칠 뒤 아틀라손의 장난은 들통이 났지만 위키피디아는 그 덕에 더 유명해졌다.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는 지난 2005년 '과학 용어에 대한 정확도에서 위키피디아와 브리태니커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발표했다.

위키피디아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 정답은 'edit(편집하기)'란 단어 하나에 있다. 전세계 누구라도 'edit' 버튼만 누르면 위키피디아에 글을 올리고 수정할 수 있다. 얼굴 없는 네티즌들의 협업(協業)이 글로벌 지식 지도를 바꾸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현재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위키피디아에 글을 올리는 네티즌이 693만 명에 이른다.

이들의 힘으로 영어판 위키피디아에 실린 용어 설명이 230만 개를 돌파했다. 1년 반 만에 두 배가 늘어났다. 브리태니커의 10배가 넘는다.

―당신은 그럼 무엇으로 돈을 법니까?

"위키피디아와는 별도로 영리 목적의 인터넷 회사(여행·책 등 생활 정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각종 강연이나 콘퍼런스에 참가해 돈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