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 이재용 전무(40)가 삼성전자 글로벌 고객총괄책임자(CCO) 자리에서 물러나 해외로 떠난다.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은 "이재용 전무는 주로 여건이 열악한 해외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체험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업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전무 해외에서 실적 내야
이 전무는 2000년 이후 매년 설과 추석 때 동남아, 남미, 중동 등지를 돌며 현지 시장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이 전무가 어느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 인도 같은 차세대 주력시장부터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등 제3세계를 돌며 현장을 배우고 인맥을 쌓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무에게 해외근무는 위기이자 기회다. 이학수 실장은 "이 회장은 아들인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인정 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을 승계할 경우 불행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따라서 이 전무 입장에서는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은 것이다. 과거 의욕적으로 인터넷 사업(e삼성)을 벌였다 실적부진으로 접은 이 전무에겐 뼈 아픈 이야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쇄신안이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를 오히려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전무는 이미 사실상 삼성의 오너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모두 물려 받지는 않았지만 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의 최대 주주로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주요 계열사의 경영권을 행사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가 회사를 떠나 경영 공백이 생기고 이 전무도 '해외 유배'를 떠나는 모양새지만, 다른 그룹 수뇌부와 달리 이 전무는 돌아올 사람이다. 해외에서 경험과 실적을 쌓으면 그룹을 물려받는 모양새가 훨씬 나아진다.
특검 수사에서 이 전무는 일종의 '면죄부'인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전무는 장기간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 사건'의 당사자다. 그러나 특검은 'e삼성 사건', '에버랜드 CB배정', '삼성 SDS사건' 등 이 전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여러 사건에 대해 '이 전무에겐 혐의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법적 책임과 별개로 도덕적 부담은 여전하다.
◆미래기술연구회 소속 임원 등 핵심으로 부상 예상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와 진보 정치권은 쇄신안에 대해 비판적이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공동상임대표는 "쇄신안은 일시적 눈가림"이라며 "이재용 전무는 백의종군(白衣從軍)이 아니라 백의퇴군(白衣退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안팎에선 "이재용 시대 삼성그룹을 이끌어 갈 사람은 누구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장급에선 미래 기술과 제품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유력하다. 또 이 전무와 함께 바이오 에너지 분야를 포함한 차세대 먹거리 사업을 연구 중인 미래기술연구회 임원들도 향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주로 삼성경제연구소 석·박사 출신들이다.
삼성이 최근 1~2년 사이에 특채한 국제감각을 갖춘 외부 인사들도 주목 대상이다. 이 전무가 글로벌 고객총괄책임자로 해외업무를 주로 맡고 있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을 해외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측은 "이 전무가 돌아오는 시기는 1~2년 뒤지만 여론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더 짧아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