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룹은 18일 임직원들의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해온 이건희 회장의 주식과 예금 등을 조만간 이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차명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하더라도 시효기간(최대 15년)이 지나 상속세나 증여세는 부과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거래를 하면서 내지 않았던 양도세와 가산세 등은 피할 수 없다.

시민단체들은 특검이 차명주식의 실명전환을 사실상 도와준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추징금만 부과될 듯

이 회장은 1199개의 차명계좌에 주식과 예금 등 4조5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특검 조사에서 밝혀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 회장의 재산은 주식과 부동산 등을 합쳐 약 3조원 정도. 특검을 통해 드러난 차명재산을 합치면 이 회장의 실제 재산은 총 7조원 이상이다. 삼성측은 "문제가 된 차명계좌 재산은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이 대부분"이라며 "이 회장이 차명계좌를 조만간 실명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차명주식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경영권 보호와 방어를 위해 주식을 분산 관리하던 것이 과거 기업의 관행이었다"고 해명했다.

4조5000억원을 실명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은 상속·증여세를 거의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87년 사망, 최장 15년인 상속·증여세 부과시한이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개정된 국세기본법 26조에 따르면 '상속·증여과정에서 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를 했을 경우 그 사실이 드러난 지 1년 이내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나은행의 이신규 세무사는 "법이 개정되기 전에 일어난 과거 내용을 소급해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들은 삼성이 이번 특검 덕분에 차명계좌를 부담없이 정리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이런 사회적 비판을 의식, 일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미 안기부 도청사건 때 8000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낸 바 있어, "삼성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또 다른 부담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차명 재산을 관리하던 전략기획실 재무라인 임원들이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거래를 통해 5643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데 대해서는 과세가 따른다. 일반적으로 주식거래는 양도세가 없지만, 지분 3% 이상 혹은 시가총액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는 시세차익의 20%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그러나 삼성은 차명계좌들을 대부분 이 기준을 넘지 않도록 잘게 쪼개 관리, 그동안 양도세 1128억원을 내지 않았다.

특검을 통해 차명계좌가 이 회장 소유로 밝혀졌기 때문에 세무당국은 그동안 내지 않았던 1128억원의 양도세와 조세포탈에 따른 가산금까지 추징한다. 추징금까지 포함하면 이 회장이 내야 할 세금은 3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특검팀에서 관련 자료가 넘어오면 추징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실명전환 절차는 법적 문제 없어

차명계좌에 있는 주식·예금이나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이나 배당금은 모두 삼성 전략기획실에서 관리해왔다. 차명계좌를 가진 임직원이 퇴사하거나 사망하면 이를 다시 다른 사람의 명의로 돌리기도 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종합소득세 납부까지 회사에서 다 알아서 해줬다"고 말했다. 차명계좌를 보안계좌로 지정하면 자기 명의로 계좌가 개설돼 있어도 잔고가 얼마인지를 알 수 없고, 출금도 불가능하다.

신한은행의 황재규 세무사는 "특검이 차명계좌 재산을 이 회장 소유로 결론 내렸기 때문에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만약 차명계좌 주인이 "내 재산이라서 못 준다"고 버틴다면 소송을 통해 가져오면 된다.

실명전환 절차는 어렵지 않다. 주식의 경우는 매매나 증여를 할 필요 없이 단순히 명의만 이 회장 이름으로 변경하면 된다. 예금의 경우, 차명으로 갖고 있는 예금주가 인출을 해서 이 회장에게 주는 방법이 가장 쉽고 현실적이다.

당사자들의 실명만 확인되면 은행은 상관하지 않는다. 다수의 차명계좌를 일괄적으로 처리하려면 차명계좌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통장과 인감 도장, 그리고 통장 인감과 맞는 인감을 찍은 인출 신청서가 필요하다. 인출신청서에 비밀번호까지 다 기재해서 개인의 지급동의서를 첨부해 일괄 제출하면, 건마다 지급거래를 해서 돈을 다 빼면 된다. 단, 이는 일반예금인 경우이고, 정기예금 같은 계좌는 무조건 예금주가 찾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