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학자 오스왈드(Oswald) 등은 최근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부여하는 경제적 가치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들은 1만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패널(Panel) 연구' 기법을 사용하였다. 같은 사람들을 여러 해에 걸쳐 추적 조사하여 자료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조사 대상자의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이 사망할 경우 그 정신적 고통을 상쇄시키기 위해 금전적 보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도출하였다.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자신의 배우자가 사망하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사망 이전의 정신적 행복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연간 평균적으로 22만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면 자식과 부모가 사망하는 경우라면 매년 각각 11만 8000 달러와 2만 8000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친한 친구는 1만 6000 달러가 필요한 반면, 형제는 2000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의 생명이 형제, 자매보다 자신에게 8배나 소중하다는 의미다. 자신이 아끼는 가까운 사람들의 생명 가치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왜 이런 도발적인 연구를 감행하는 것일까? 경제학자라고 해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생명은 본래 돈으로 따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세간의 비판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오스왈드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망 피해자에 대한 법원의 보상 금액 판결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다. 우리의 연구는 피해자에게 지불되는 보상 금액을 보다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유도하는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대해 가격을 매기면서 살아간다. 보다 높은 보수를 받기 위해 위험 부담이 큰 작업을 택하기도 하고,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과속 운전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깎아지른 암벽 등반처럼 짜릿함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자신의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무한대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여긴다면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 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외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거나,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고, 밤을 새워 무리하게 공부하거나, 놀이공원에 가서 청룡열차를 타서는 안 된다. 이 모든 행위는 인간의 조기 사망 확률을 일정 부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거나,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나아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이러한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정부 정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 종종 인간 생명에 대해 화폐가치를 부여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이 때 등장하는 개념이 '통계적 생명의 가치(value of statistical life·VSL)"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출퇴근 도로에서의 교통사고로 인한 조기 사망 확률이 연간 0.00001 (10만 명당 1명)이고 현재 이 지역에 총 1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면, 교통사고로 인해 연간 10명이 사망한다는 말이 된다.

또 사고 방지용 안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사람들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금액을 1인당 연평균 1만원이라고 하자. 이 경우 이 지역의 총 지불의사금액은 100만명×1만원=100억원이다. 이 100억원을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10명으로 나눈 10억원이 바로 이 지역 주민 1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금액, 즉 통계적 생명의 가치가 된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미국인의 통계적 생명의 가치를 1인당 610만 달러로 제시하고 있다. 이 값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직업인 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추가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대가로 61 달러를 추가로 지급 받는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앞에서 설명한 방식을 통해 계산한 수치다.

통계적 생명의 가치를 이용하면 환경보호청이 추진하고자 하는 수돗물 품질 강화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다.

수돗물에 포함되는 비소는 방광암을 일으키는 발암 물질이다. 수돗물의 비소(砒素) 농도를 낮추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사망 확률이 낮아지면서 얻어지는 경제적 효과를 통계적 생명의 가치 방식을 통해 계산해서 비교하게 된다. 두 수치를 비교함으로써 적정 수준의 비소 저감(低減) 정책을 입안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통계적 생명가치의 추정치는 연구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미 환경보호청은 최근 별도의 연구에서는 통계적 생명가치를 370만 달러로 발표하기도 했다. 또 연구 대상 집단의 소득 수준과 직업 및 나이 분포에 따라서도 값이 다르게 나타난다. 국내의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통계적 생명가치는 11억 3천만 원에서 18억 3천만 원 정도로 추정되었다.

경제학의 생명 가치 연구는 결코 생명 존중 사상과 배치되지 않는다. 단, 연구의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연구 결과가 남용되지 않고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정부는 인간의 생명 가치를 계산함으로써 보다 합리적인 환경·보건 및 노동정책을 입안할 수 있고, 법원은 억울한 피해자에 대해 보다 공평한 보상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관건은 이러한 연구가 얼마나 정확한 경제이론과 엄밀한 연구방법, 그리고 신뢰성 있는 자료를 통해 이루어졌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