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중심부에 위치한 전자랜드 빌딩. 일요일 낮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아 매장이 한산했다. 1층 가전제품 매장에는 오후 들어 40~50대 주부 손님들이 찾아와 TV와 세탁기 등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선뜻 구입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컴퓨터·휴대폰을 판매하는 3~4층 매장에는 직원들이 2~3명씩 서 있었으나, 손님이 거의 없어, 직원들 수가 손님의 수보다 많아 보일 정도였다. 에스컬레이터 앞의 한 컴퓨터 매장 직원은 "오후 3시인데 아직 개시도 못했다, 조립 PC를 할인해서 35만원에 줄 테니 가져가라"면서 소매를 붙잡았다.
전자랜드는 용산 전자상가 안에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이웃한 다른 상가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은 점포가 대부분이었다. 이날 1층만 휴장한다고 밝힌 N상가에 가보니 1층뿐 아니라 2~3층 컴퓨터·전자기기 매장도 복도마다 1~2곳 점포만 빼고 나머지는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한국 전자산업의 상징이었던 용산이 힘들어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봄·가을 용산 전자상가에는 혼수 가전제품을 사려는 예비 신혼부부와 컴퓨터를 구입하려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으나, 이제는 추억 속의 풍경이 됐다.
◆가격을 공개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소비자 빼앗겨
용산 전자상가가 위기를 맞은 가장 큰 이유로 2005년을 전후해서 급성장한 인터넷 쇼핑몰이 꼽힌다. 인터넷 쇼핑몰은 전자제품의 가격을 비교해 소비자가 가장 싼 곳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 반면 용산 전자상가는 일부 가전제품 매장을 빼면, 나머지 대부분 매장은 제품에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다. 소비자로서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 일부 점포의 직원들은 가격을 묻는 소비자의 질문에 "얼마까지 들었느냐, 더 싸게 해줄 수 있다"고 답했다.
일부 가전제품 매장에선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가격에 판다"면서 가격을 공개했으나, 인터넷에서 비교해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42인치 PDP TV 'SPD-42Q92HDS 모델'은 용산에선 "180만원대 제품을 117만원에 판매한다"고 밝혔으나, 7일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선 112만~113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용산에서 90만원대에 판매 중인 LG전자의 드럼세탁기 '트롬 WD-CR301SS 모델'은 인터넷에 69만5000~70만5800원 선에 나와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대리점과 하이마트 등 전자제품 양판점이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춘 것도 용산 전자상가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요인이 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형원 박사는 "최근 전자제품 소비자들은 인터넷에서 미리 구입할 상품의 정보를 구하고, 가까운 대리점을 찾아 눈으로 확인한 다음, 다시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는 방식으로 소비패턴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무작정 대형상가를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줄었다는 설명이다.
◆'용산 전자상가'의 장점을 살려라
용산 전자상가에는 국내에서 판매하는 대부분 전자제품의 애프터서비스 센터가 밀집돼 있어, 사용하다 고장이 난 제품을 곧바로 수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애프터서비스의 편리성'처럼 용산 전자랜드가 보유한 장점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용산 전자상가의 상점들 중에는 G마켓 등 온라인 쇼핑몰을 여는 곳이 크게 늘어났다. 오프라인 매장(용산)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이다. G마켓 관계자는 "용산에서 점포를 운영하면서 최근 G마켓에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한 상인이 700여명에 이른다"면서 "이들은 온라인 매장을 연 첫해에 전년대비 70~80% 이상 매출이 늘어난다"고 전했다.
일본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키하바라는 90년대 중반 현재의 용산 전자상가처럼 손님이 줄어 심한 불황을 겪었으나, 지난 2~3년 전부터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아키하바라에 도쿄대, 메이지대, 히타치, 산요 등 대학과 기업의 연구소를 유치, 판매기능이 전부였던 아키하바라에 연구개발 기능을 불어넣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상무는 "아키하바라의 부활을 주도한 양판점 '요도바시카메라'는 정가제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전자제품상가뿐만 아니라 식당가·서점·골프용품점·자전거점·안경점 등을 유치해 소비자를 불러 모으는데 성공한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