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환율 문제에서 한국은행을 지지하는 듯한 입장을 내놨다. 환율 정책을 놓고 재정부가 한국은행과 대립하는 양상에서 상당히 눈에 띄는 행보.

특히 물가, 금리, 환율 등의 분야에서 잇딴 소신 발언을 펼쳤던 강만수 장관이 관계 기관들과 논란이 발생하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 재정부 내부에서조차 강만수 장관을 비롯한 재정부 수뇌부의 행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인지 한국은행측에 화해를 제스처를 보내는 것인지 주목할 만하다.

◇"환율 상승, 물가 불안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KDI는 4월 경제동향에서 "경기가 완만하게 둔화되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고 현 경기 상황을 진단했다. 3개월 연속 경기 선행지수가 하락, 경기 하락 신호가 또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만수 장관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풍겨온 금리 인하의 뉘앙스를 뒷받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

그러나 환율 문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KDI는 "3월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이후 4개월 연속 중기물가안정목표를 상당폭 상회했다"며 "추세적 물가기조의 지표로 인식되는 근원물가지수(곡물 이외 농산물과 석유류 제외) 상승률도 크게 확대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KDI는 특히 "최근의 물가 상승은 원화 약세에 따른 수입재화의 국내가격 상승에도 상당부분 기인한다"며 "향후 환율 상승에 따라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히 영향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이제껏 물가 상승이 원자재 특히, 유가의 고공행진에 따른 구조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라며 물가 안정을 목청 높여 외치면서도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가격 감시와 담합 단속, 그리고 유통구조 개선 등 소극적인 대책으로 일관해왔다.

반면 환율 하락을 통한 물가 안정에는 그다지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다. 오히려 환율 상승을 통해 경상수지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시장에는 이같은 시각이 반영됐고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제1차관이 취임하자 뒤 환율은 상승세를 탔다.

특히 최중경 차관은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급격한 하락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 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또 최근 환율이 재차 하락했을 때도 최 차관이 다시 나서 환율 시세를 조작하는 세력이 있는 지 조사할 것이라는 엄포를 놨다.

◇강만수 장관 입다물고 있는데..KDI는 한은 지지

KDI의 환율 상승과 그에 따른 물가 상승 부담 지적은 물가 안정을 고수해온 한국은행측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KDI가 재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이기도 하고 특히나 강만수 장관이 최근 들어 무거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터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강만수 장관은 취임 이후 성장, 금리, 환율, 산업은행 민영화 등에 대해 소신 발언을 했고 의도야 어떻든 관련 부처인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과 마찰을 빚는 양상으로 비춰졌다. 결국 이달 들어 강 장관은 일절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재정부와 한국은행은 환율과 금리 인하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한국은행이 기본적으로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세우고 있어 성장을 지향하는 재정부와의 대립은 일정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특히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치를 넘어온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랬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의 물가상승이 원자재가격 상승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통화정책이 용인할 수는 없다고 했고 환율이 한창 상승할 때 "천장을 한번 테스트 해본 것"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통화정책이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은 재정부측의 금리 인하 기대에 대한 반박이었고, 환율에 대한 언급은 재정부측이 환율 상승을 통해 기대하는 경상수지 개선에 대해 쐐기를 박는 발언으로 풀이됐다.

둘다 물가 안정을 염두에 둔 발언.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상황 역시 우려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KDI가 경제동향에서 환율 상승에 따라 물가 상승을 언급하고 나온 것. KDI는 물가 상승요인으로 최근 경기 상승세에 따른 서비스물가 상승도 꼽았는데 이 역시 한국은행의 판단과 일치한다.

강만수 장관이 입을 다물고 있는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러니 모피아`라는 질책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관계기관의 마찰을 빚는 모습과 질책을 묶어 새정부 경제정책의 기틀을 잡은 강 장관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KDI의 한국은행 지지 모습은 내부의 반발과 화해의 제스처 양면의 성격을 갖고 있다. KDI가 소신에 차서 이같은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인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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