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유학 온 세르 조드벡(Zodbek)씨.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은행'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은행 지점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워요. 간단한 입·출금 서비스도 20~30분은 기본이죠. 그런데 한국은 은행 서비스가 너무 신속해서 놀랐어요."
그는 한국식 은행 서비스에 매료된 나머지 한 시중 은행이 마련한 '글로벌 인턴십'에도 참여했다. 조드벡씨는 "직접 일해보니 시중 은행들의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작은 파이를 놓고 다투느니, 안에서 갈고 닦은 경쟁력을 무기로 해외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국내 시중은행들도 같은 인식이다. 국내 시장이 포화돼 가면서 이제는 '글로벌 플레이어(Global Player)'로 거듭나야만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은행들은 치밀한 전략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선점 전략
국내 은행들의 첫째 해외진출 전략은 '선점(先占)'이다. 남보다 빨리, 더 많은 곳에 나가야 더 수월하게 고객을 확보할 수 있고, 수익 마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 진출 속도가 가장 빠른 은행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은 지난 1월말 기준 총 12개 국에 12개 직영지점과 현지법인 5개(지점 23개), 사무소 1개 등 총 39개에 이르는 해외 점포가 있다. 또 신한은행은 2월 초 기준 총 11개국에 14개 직영지점과 현지법인(7개)의 지점 13개 등 34개 해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선점 전략에는 지리적 고려가 필수다. 경제·정치·문화적으로 인접한 국가를 집중 공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시너지(synergy)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중국과 동·서남아시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독립국가연합(CIS) 세 지역을 중심으로 진출하는 'KB트라이앵글 네트워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행 우치구 해외사업부장은 "이들 지역은 경제 발전으로 기업은 물론 개인 금융 서비스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중국·홍콩·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폴·두바이·카자흐스탄을 집중 공략해 '아시아 금융벨트'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적 포부를 갖고 있다. 기업은행은 올해부터 해외진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중국 현지법인과 러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몽골 사무소 및 지점 개설을 추진 중이다. 해외 투자은행(IB) 분야에서는 산업은행이 독보적. 이미 중국(베이징·상해·홍콩)과 유럽(런던·아일랜드·헝가리), 미주(뉴욕) 등에 13개 점포를 개설하고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현지화 전략
지금까지 국내 은행들의 해외 영업은 주로 현지 한국계 기업이나 교민들에게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 테두리를 벗어나 현지인(현지기업)을 적극 공략하는 전략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노하우 부족, 글로벌 대형 은행들과의 경쟁력 차이 등으로 현지 시장 공략이 난망(難望)한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현지의 우수 금융인력을 동원하고, 글로벌 수준의 자금 동원이나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1993년 베트남에 '신한비나' 은행,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 '신한크메르은행'을 설립하면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펼쳐왔다. 2006년부터 외국인을 대상으로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을 실시해 해외 인력을 적극 양성하고 있으며, 외국인 직원들을 위해 신용평가 전산시스템을 영어·일본어 버전으로도 개발했다.
우리은행 역시 국내 유학중인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인턴십을 운영하고, 국내 행원들을 연간 20여명씩 해외에 파견해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한편, 국내 은행 경쟁력 양성을 위한 현지 직원들의 본국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26일에는 중국 현지 개인금융영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인민폐(人民幣) 영업 승인도 받아 한발 앞서가고 있다.
산업은행은 국내 본점이 해외 점포를 일일이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런던·홍콩 등에 권한을 나눠주는 경영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 외국인 신입직원과 경력직원을 뽑아 현업에 배치하고 있다.
올해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러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몽골에 동시 다발적으로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은행은 아예 처음부터 해외 진출 국내 중소기업 외에도,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 영업을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